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6월 한국신문편집인협회 초청으로 전국 일간지·방송사 정치부장들과 2시간여에 걸쳐 포럼을 가진 적이 있다. 국민들의 관심사로 당시 정국을 달궜던 복지문제와 야당 통합, 내년도 총선 예상 등이 자연스레 화두가 됐다. 손 대표는 이날 이런 저런 답변과 포부, 평소 생각들을 내놓았으나 정작 별 뉴스거리가 없다는 게 정치부장들의 불만이었다.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치면서다. 손 대표는 한 술 더떠 대변인 등에게 뉴스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한단다. '손 대표는 뉴스거리 만드는 걸 싫어하는 분'이라는 게 그날의 유일한 뉴스거리라는 우스갯말로 당시 포럼이 마무리됐다.
평소 솔직한 것으로 알려진 손 대표 마저도 외부를 향해 정치적 속내를 그리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가까운 측근들도 헷갈릴 때가 있단다. 아니 '진짜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단다.
10·26 재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민주당 남원시장 후보 경선을 두고 지금도 말들이 많다. 정년이 몇 년씩이나 남은 고위 공직자 2명이 사표를 내고 출마한 것도 그렇고, 당 후보로 적합하지 않은 인물까지 경선에 참여시킨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전도가 양양한 공직자들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위원장과 협의 없이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후보에 출마했겠느냐", "많은 후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원장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이지 않겠느냐"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민주당 남원지역위에서 오랫동안 당원 생활을 했다는 한 인사는 공천권을 가진 이강래 의원(지역위원장)이 속마음을 열었다면 그렇게 많은 후보들이 과열경쟁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며, 경선과정과 경선후 지역의 민심을 갈기갈기 찢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속내를 들키지 않는 게 그동안 정치인들의 능력으로 치부된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을 거느려야 하고, 유권자들에게 골고루 지지를 받기 위해 현실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한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나는 가수다'에 국민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가수의 능력에다 진솔하고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능력만 있고 진솔함이나 열정이 없다면 그 무대에 서기도 어려울 뿐아니라 곧바로 퇴출이다. 자신의 모자람과 부끄러운 자화상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가수는 오히려 사랑을 받는다.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본다.
'내가 몇 선 국회의원인 데' 목에 힘만 잔뜩 주거나, 무색무취한 자세로 떨어지는 표나 받으려 하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의 무대는 없을 것이며, 또 그런 무대는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다. 진정성이 없는 정치인이라면 큰 열정을 가진 후배에게 무대를 열어주는 게 시대적 흐름이라고 본다.
내년 총선을 향해 입지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입지자들의 한마디 한걸음이 모두 정치적 활동으로 이해되는 시기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입지자들마다 잔뜩 머리를 굴려 최대한 많은 표밭을 갈려고 한다. 입지자도 힘들고, 유권자도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정치인이다' 프로그램이 있다면, 입지자의 능력과 열정, 진솔함을 유권자들이 걸러낼 수도 있을 텐데. 내년 총선에서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