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얼마나 많이 약자의 입장에 서볼까. 강자와 약자의 관계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무리 강자일지라도 그 보다 더 강자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약자일지라도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 앞에선 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 사장과 직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 권력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 등 사회에선 수많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세상을 흔히 약육강식의 세계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약한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최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상영되고 있는 영화 '도가니'이다. 나는 다양한 강자와 약자의 모습을 영화 '도가니'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이사장과 교사들, 들을 수 있는 자와 들을 수 없는 자 등의 관계가 존재했다. 이들 관계에서는 영화를 보는 내가 끝없는 절망을 느낄 정도로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생존방식이 적용되어 있었다.
주인공 강인호는 부정한 방법으로 강자의 힘을 빌려 청각 장애인 학교에 부임하게 된다. '교사'라는 직업을 매개로 강인호는 교장과의 관계에서 약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강인호는 그 학교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를 알게 된다. 듣지 못하기에, 집이 가난하기에 학생이면서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로 전락한 아이들이 그 폭력의 대상이었다. 강인호는 갈등 끝에 아이들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 그 후 아이들의 입에서 밝혀지는 폭력의 실상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이것이 만약 실제 사건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강인호가 사건을 파헤치고 교장과 행정실장 등의 악행을 밝혀낸 다음 그들을 쫓아내고 해피엔딩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권선징악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
강인호가 사건을 파헤치자 학교로만 국한되어 있던 강자와 약자의 사슬이 무진시의 전체로, 즉 사회로 넓혀져 갔다. 약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사회는 더욱 그들에게 냉혹했다. 약자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의 순수와 진심을 짓밟는 것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종교의 권력, 교육의 권력, 법의 권력, 지역 사회의 권력 등과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돈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돈의 권력에 가장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이 바로 돈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무진시의 얽히고 얽혔던 관계의 뿌리가 돈의 힘에서 비롯된 관계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에 돈이 없는 자, 즉 약자들의 굴복을 사회가 종용한다. 교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그들에 굽신대는 생활지도교사 박보현,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도 할 줄 모르지만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 사건 무마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지역 경찰 등이 돈에 굴복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피해자 학생의 부모들마저 돈에 매수되어 고소를 취하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이렇듯 '돈'이라는 권력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도덕도, 법도, 양심도 통하지 않는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아마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도가니 속에서 강자보다는 약자의 입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이 바로 제 2의 연두요, 유리요, 혹은 강인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 느끼고 있고, 그래서 이토록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람들의 분노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로 시작 되어진 약육강식의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 분노가 더 이상 약자들이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게 만들 수 있기를.
/ 최윤미 전주교대 실과교육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