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고창 모양성 - 조상진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은 옛 고창고을의 읍성이다. 고창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양성(牟陽城)이라 부르는데 백제때 고창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린데서 연유한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왜구로 부터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축성한 것이다.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자연성곽으로, 산성(山城)이 주는 시원한 눈맛과 평지성(平地城)이 주는 아기자기함이 잘 어우러진 평산성(平山城)이다.

 

축조연대는 성벽에 계유소축(癸酉所築)이란 글자로 보아 단종1년인 1453년으로 추정된다. 또 제주시(濟州始) 나주시(羅州始)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호남의 여러 고을이 동원돼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는 4-6m가량이다.

 

모양성과 관련, 두 가지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 온다. 하나는 모양성을 부녀자들이 쌓았다는 것이다. 고창읍에서 8㎞ 떨어진 아산면 독곡에 서산고성(西山古城)이 있는데 이것은 남자들이, 모양성은 여자들이 쌓기로 경쟁을 했다. 부녀자들은 개미처럼 쉬지않고 돌을 나르며 성을 쌓았다. 그러나 남정네들은 부녀자들 쯤이야 하고 방심하면서 술과 노래로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토기와 거북이 경주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모양성은 전체가 완성되었으나 서산고성은 쌓다 만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답성(踏城·성밟기)풍습이다. 부녀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極樂昇天)한다는 것이다. 성밟기는 윤달, 그 중에서도 윤삼월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등 여섯 수가 든 날은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 더 많은 부녀자들이 모여들었다. 겨우내 언 성을 다지고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둥그런 성안을 걷다 보면 노송의 솔바람과 대나무 숲(孟宗竹) 사이로 유장한 판소리 가락이 들리는 느낌이다. 또 성밖 오솔길에는 봄에 선홍색 철쭉꽃이, 가을에 하얀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 성을 나서면 바로 판소리의 중시조 신재효 고택과 판소리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 모양성을 배경으로 1-5일 모양성제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하지만 축제가 아니라도 어느 때나 한번 들러 보면 발품 값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성안팎을 거닐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옴을 느낄 것이다.

 

/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