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글보다는 외국어가 대접받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도심의 간판과 아파트를 보면 외국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전북일보 취재진이 최근 현장을 돌며 실태를 점검한 결과다. 우리 말과 글이 천대받고 망가져 정작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적 불명의 뜻 모를 간판까지 눈에 띄고 있다니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인가.
이번 점검에서 전주 덕진동 대학로 일대 상가 261개소 가운데 110개소(42%)가 외국어 간판을 달고 있으며, 한글을 외래어와 혼용한 곳은 78개소(30%)로 조사됐다고 한다. 편의점은 아예 전체가 외국어 간판으로 걸려있다는 내용이다. 반면 우리 말로 표기된 간판은 불과 10개에 달한다. 상권 밀집지역인 전주 고사동, 중앙동 일대도 '외국어 범람'은 마찬가지다. 이러다간 국가적 정체성의 기반을 모조리 외래어에 헌납할 불상사가 날지 모른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의미도 잘 모를 외국어 이름 투성이다. 오래 된 아파트들은 그렇게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할 지경이라고 한다. 비뚤어진 문화적 감성 앞에서 한글 이름 아파트들이 초라하게 주눅 들고 있다니 비극이 따로 없다. 영어 몇 마디가 들어가지 않는 간판은 왠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상혼이 문제다. 우리 이름이 외국어에 밀려나는 현상은 우리가 자초한 꼴이다.
한글은 유네스코가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세종대왕상을 제정하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한국어를 국제특허 협력조약의 국제용어로 채택했을 만큼 우수한 문자다. 그런 한글이지만 우리가 외면하면 곧 소멸하게 될 우리만의 글이다. 한글에 대한 투자는 우리 민족 유산을 지키는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2주에 한 개 정도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단다. 외국어를 높이고, 우리 것을 낮춘다면 거대 언어권에 우리 말과 글도 빨려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무분별한 상혼도 문제이지만 젊은이들에게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긍지와 의식을 길러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