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반복 독서

정기원 (익산시립마동도서관장)

높고 파란 하늘, 황금물결의 들판, 길가의 코스모스, 신선한 공기로 가득한 가을이 돌아왔다. 산과 들로 놀러가기에도 좋고, 모처럼 여가를 즐기며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가을은 책을 읽기에 딱 좋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바쁘다보니 책을 빌리거나 구입하면 한번 정도 읽고 책을 덮기 일쑤고, 두 번 이상 읽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음식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것처럼 독서도 여러번 읽어 미독이 될 때까지 읽는 것이 필요하다.

 

'독서의 기술'의 저자 모티머 j. 애들러는 네 가지 수준의 독서법을 그의 저서에서 제시한다. 초급독서, 점검독서, 분석독서, 신토피칼 독서의 수준을 말한다. 독서를 하다보면 독서능력이 올라서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겠지만, 보통의 독서능력을 가지고는 쉽지 않다. 수준이 낮은 것에서부터 높은 것으로 한 계단씩 쌓아가야 가능하다.

 

제1수준의 초급독서는 기초 및 초보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처음으로 책을 대하는 자가 최초로 해야 할 일로 하나하나의 단어를 식별하며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내는 수준이다.

 

제2수준의 점검독서는 주어진 일정한 시간 안에 될 수 있는 대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으로 계통을 세워서 골라 읽는 기술이다. 이 수준에서는 '이 책은 무엇에 대해서 쓴 것인가?',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어떠한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가?'를 검토하게 된다.

 

제3수준은 분석독서로 복잡하고 계통적인 독서활동이며 독자에게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독자가 책 내용의 계통을 세워서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철저하게 읽어내는 독서법으로 가장 완벽한 독서법이다.

 

제4수준은 신토피칼 독서로 조직적인 독서법이며 비교독서법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두 권 이상의 책을 서로 관련지어 읽는 방법이며 독자는 읽은 책을 통하여 주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분석하여 읽게 된다.

 

위에서 말한 독서의 네 가지 수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한번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여 읽어야함을 알 수 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야, 책 내용이 품고 있는 참뜻을 마음 속 깊이 새길 수 있다.

 

실제로 옛 선비들은 수백 수천 번은 기본이고, 수만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책을 읽기도 했다. 참으로 부지런한 독서가였던 김득신은 '사기'에 나오는 '백이전'을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세종대왕도 '백독백습'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한권의 책을 100번씩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반복 독서는 당시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나, 한번 읽은 책은 더 이상 보지 않는 오늘날 우리의 독서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책을 덮어버려 며칠이 지나면 읽은 책의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책을 수없이 많이 읽어 줄줄 외운다 해도 그것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책을 거듭 읽어서 그 참뜻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자신의 사고를 첨가해 삶에 적용할 때에야 비로소 독서가 완성되게 된다. 아름다운 가을날, 좋은 책을 곁에 두고 반복하여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느낌, 사고로 풍성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