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흥부정신 - 조상진

"우리나라에 경상도에는 함양이 있고 전라도에는 운봉이 있는데, 운봉 함양 두 얼품(둘이 맞닿는 곳)에 중년(막연한 어느 때)에 박가형제가 있었으되, 놀보는 형이요, 홍보는 아우인데, 같은 부모 소생이나 성품은 각각이라. 사람마다 오장육부로되 놀보는 오장이 칠보던 것이었다."

 

판소리 흥보(또는 흥부)가의 첫 부분이다. 이어 자진모리 장단으로 놀보(또는 놀부)의 온갖 심술에 대해 늘어 놓는다. 불난 집에 부채질, 오대 독자 불알 까고, 똥 누는 놈 주잔치고, 곱사등이 뒤집어 놓고… 등 무려 45가지에 이른다. 심술을 듣다 보면 괘씸하기 보다는 웃음이 절로 난다.

 

반면 동생 흥보는 마음이 매우 착하다. 그런데 그 사례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등 11가지에 불과하다. 장단도 중모리다. 흥미를 끌기 위해 온갖 사례를 찾았겠지만 세상에는 선행보다 악행이 도드라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핏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어쨌든 이를 기리는 남원 흥부제가 8-9일 열렸다. 남원은 흥보가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명분이 선다. 남원시가 1992년 경희대 민속학연구소에 고증용역을 의뢰한 결과 흥보가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설화 중심의 얘기라는 것이다.

 

무대의 배경은 두 곳이다. 하나는 인월면 성산마을로 '박첨지 설화'에 근거한 흥부와 놀부의 고향이다. 또 하나는 아영면 성리마을로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쫓겨나 부자가 된 발복지라는 게 밝혀졌다. 지금도 성산마을에서는 삼월삼짇날 박첨지의 제사를 지내고, 성리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춘망보제를 지내고 있다.

 

남원시는 이 행사의 주제로 우애 나눔 보은 행운의 흥부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놀부의 이기적 삶보다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의 삶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한때 흥부를 폄하한 적이 있다. 놀부를 자본주의 정신의 구현자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흥부를 못난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으로 보면 흥부는 착한 자본가며 생태주의자, 가난한 이웃을 돕는 박애주의자라 할 수 있다. 빈부격차 등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흥부정신의 재발견은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