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보 시인은 '산 사나이'다. '산이 있어 / 살아갈 맛이 나고 / 산이 있어 / 생명의 의미가 부여되고 / 산이 있어 / 편안한 임종을 누릴 수가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그가 40편이 넘는 연작시'산 이야기'를 쓰도록 만들었다. 그가 펴낸 시선집'박형보 시선집(계간문예)'을 보면 산은 신앙의 대상에 가깝다. 지리산, 설악산, 치악산 등 30개 성상(星霜)이 넘는 고된 산행은 산울림처럼 영감을 선물했다. 전세계 100여 국을 누빈 이력 덕분에 '시인' 외에 '세계여행문학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발바닥을 근질거리게 하는 역마살은 그를 가만놔두지 않았다.
"막상 시선집을 내놓고 보니, 좀 더 시쓰는 일에 정진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막심해요.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어요. 인생을 정리하는 수순만 남겨놓은 상태인데….(웃음)"
'고독한 꽃들의 환상','사랑의 여운','인간에의 고뇌','산과의 대화','산이 부른다','알프스 가는 길','강하고 담대하라' 등으로 엮인 시선집에는 그간의 시집에서 추린 시들이 모두어졌다. 산행과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감회, 인생과 사랑, 고독을 주제로 한 평범한 시 같지만, 오래 묵힌 시모음이다. 오랜 지기인 박봉우 시인은 그를 두고 "절대 시인을 행세하지 않고 시를 가다듬은 시인"이라고 말했고, 정을병씨도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인은 요즘 외따롭다. "몇 년 전 작고한 소설가 정을병, 곽 연 고려대 교수 등이 이따금 보고 싶고, 눈물도 난다".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는 뒤늦은 후회마저도 시로 삭히는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인이었다. 정읍 출생인 시인은 '사상계'로 등단한 뒤 4권의 시집, 3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전주시청 공무원, 전북도의회 신문 편집 주간, 전주 상공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 세계여행문학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