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명예회장은…

남다른 고향 '전북 사랑'…5선 의원으로 문화·에너지 사업에 큰 족적

김 명예회장의 고향 사랑은 누구보다 뜨겁다. 김영진 사장의 말처럼 "무엇이든 생기기만 하면 고향으로 달려가"내놓는다. 기부가 거의 육화(肉化)된 느낌이다.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1973년 설립한 목정장학회가 그렇고, 2001년 설립한 목정문화재단이 그렇다. 그것 말고도 알게 모르게 장학기금이며 발전기금, 각종 대회 등을 후원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움켜쥐려 하고, 말로만 고향 사랑을 외치는 세태와는 정반대다.

 

김 회장의 일생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출판사업과 정치활동, 그리고 도시가스 등 에너지사업이다.

 

1925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 회장은 1938년 무풍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서 '중학강의록'을 공부하던 중 가출, 서울로 올라갔다. 그의 나이 14세 때다. 서울에서 친척 아저씨인 우석(愚石) 김기오 선생을 만나 부자의 인연을 맺었다. 일찌기 자손이 없었던 우석 선생은 김 회장의 선친을 찾아가 "종말(김 회장의 兒名)이를 달라"고 한 바 있다.

 

김 회장은 낮에는 우석이 운영하던 문화당 사진제판부에서 일하고 밤에는 덕수상고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미래의 꿈을 키웠다. 이어 조선신탁은행에 들어가 2년여 은행원 생활을 했다. 해방이 되고 1948년 우석이 세운 대한교과서 창립사원으로 입사했다. 6·25 전쟁 중 국민방위군을 거쳐 육군 경리장교로 들어갔으며 우석이 운명하자 1955년 대위로 예편, 본격적으로 출판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 해 우리 문학사에 금자탑을 이룬 '현대문학'이 창간되었다. 당시 한방에서 뒹글던 소설가 오영수씨로 부터 목정(牧汀)이란 호를 받았다. 물가에서 유유자적하는 낭만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1961년에는 대한교과서 사장에 취임하고 어문각 설립, 한국번역도서주식회사 인수, 삼광고등학교 인수, 새소년사 설립, 새한제지 설립, 월간 '詩文學'창간 등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대부로서 자리를 확고히 한 것이다. 2003년에는 충남 연기군에 교과서박물관을 세웠다.

 

김 회장은 1973년 고향 무주 청년들의 성원에 힘입어 무주·진안·장수지역구에서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 무소속 원내총무를 맡았다. 이후 10대에는 민주공화당으로, 12대에는 국민당으로 당선되었다. 뒤 이어 14대(민자당)와 15대(자민련)에는 전국구로, 5선 의원이 되었다. 당시 택시요금 거리·시간병산제 실시와 농어촌 백서 발간 등의 족적을 남겼으며 지역구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김 회장은 또 미래산업인 에너지분야에 관심을 돌려 1982년 전북도시가스를 설립했다. 현재 전북도시가스는 전주와 김제, 완주군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남원, 순창, 무주, 고창군에 공급할 예정이다. 또 2003년에는 서해도시가스(한보도시가스)를 인수해 충남 서북부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올 8월에는 미래엔인천에너지를 설립했다.

 

미래엔그룹의 지난해 말 매출액은 7700억 원이며 2014년에는 1조원 매출 700억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