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수학여행

이재홍(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이상하다. 약 일주 전부터 마치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듯 하루에도 옷을 수십 번씩 입었다 벗었다 하며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른다. 물론 중간고사도 끝났고,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데다 여자 아이니 이해가 가지만 여느 때와도 확실히 다르다. 보다 못해 대체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마치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입에서 쏟아지듯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요점은 수학여행이다. 얼마 뒤 떠날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들을 입어보고 날짜별로 옷을 맞추어 고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 엄마를 닦달하여 입고 갈 옷, 신발, 머리핀 등 액세서리도 한참 전부터 조금씩 준비하였다고 한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잠깐 오라하여 수학여행(修學旅行)의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 수학여행? 왜 하필이면 수학여행이죠? 가서 수학공부 할 것도 아닌데...'' 하는 것이었다. 유머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정말 모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사전적 의미를 알게 하고 싶어 검색을 해서 외워오라고 했다.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평소 접하지 못하는 문화재나 자연, 유적지 등에 실제가서 직접 보고 배우도록 하기 위해 교사의 인솔로 실시하는 여행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여행이자 학습인 것이다. 그런데 학습적인 측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여행만을 생각하여 오로지 여행 준비에만 애쓰고 있는 딸을 보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자책감과 함께 '내 학창 시절 수학여행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오래된 앨범을 뒤적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 사정 때문인지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었고 지금 딸아이와 같은 나이인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수학여행을 간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커먼 동복 교복에 까까머리를 하고 천진

 

난만하게 웃으며 버스 계단에서 폼을 잡고 있는 30여 년 전의 내 모습을 보고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이라고 입을 옷가지를 챙기며 부산떨었던 기억이 전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교복에 있었으니... . 그 때는 교복, 두발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수학여행 때 챙겨 간 옷이라고 해봐야 입고 간 동복 교복과 요즘 개그 소품으로나 주로 사용되는 청색 운동복(무릎 부분이 튀어나온)이 전부였다. 교과서에서나 본 다보탑과 석가탑이 무척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처음으로 친구들끼리만 잠을 잔 밤, 유난히 얼굴이 검어 연탄이라는 별명이 더 친근한 담임선생님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등 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치약 테러의 공포에 중요부위(?)를 지키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난생 처음 종이컵에 담긴 알코올이 함유된 액체에 혀도 담가보고, 누구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이유 없이 터진 웃음보에 날이 밝는 줄도 몰랐던 추억이 있었다. 그 때는 의식주를 해결하느라 웬만한 가정에서는 가족 여행이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때이니 국사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문화재나 유적지, 우리나라의 절경 등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 같다. 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 생활수준의 향상, 특히 주 5일제 근무에 따른 여가 시간의 확대가 여행문화를 발전시키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부터 현장체험의 많은 기회를 제공하여 수학여행의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이전의 수학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설악산, 속리산 등 국립공원과 많은 문화 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경주 등에서 제주도나 외국으로의 여행이 늘고 있으며 단순한 관람 문화에서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늘어 체험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비용의 증가와 함께 배운다는 사전적 의미의 퇴색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새로운 문화의 체험과 경험이라는 긍정적인 면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수학여행지인 제주도에 대해 지리적, 문화적 특성과 문화, 유적지, 유물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이해하여 미리 알고 가도록 숙제를 주었으니 확인해 볼 것이며 아무쪼록 지도 교사의 인솔에 잘 따르고 건강하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는 여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우리 전주도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관광지가 많은 만큼 지자체와 도민 모두 노력한다면 수학여행이나 단체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도시가 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재홍(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