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두짝

학생 단편소설

 

피아노 학원 간판 바로 옆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현수막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수학학원에 늦을 것 같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순간 바람에 휘날리던 현수막이 구겨지듯 접혔다. 그 때문에 내가 보고 있던 곳이 가려졌다. 머무를 곳을 잃은 눈은 현수막에서 천천히 내려와 신발 코에 내리꽂혔다.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가 왠지 어지럽게 느껴져 서둘러 자리를 떴다.

 

 

“김희원, 교무실로 가봐. 담임 호출이야.”

 

반장의 말에 겨우 들었던 머리를 다시 책상에 묻었다. 점심시간의 기분 좋은 단잠을 깨우다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하지만 안갈 수도 없기에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성적 때문이겠지, 한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담임은 교무실에 막 들어서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눈썹 사이에 내 천(川)자를 그렸다.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틀어막으며 담임 앞에 상담용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희원아, 네 성적은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심지어 저번 1차고사 때보다 더 떨어졌더구나. 무슨 일 있니? 학교생활에 문제라도 있는 거야?”

 

“.......”

 

담임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곧 20분에 걸친 설교 아닌 설교를 쉬지 않고 쏟아내었다. 숙인 머리 위로 선생님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져, 꼭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숙이고 있느라 뻐근해진 목을 주무르자니 학기 초의 악몽이 떠올랐다. 담임은 오랫동안 나를 간섭해왔다. 자기소개서 장래희망 란에 ‘피아노니스트’라고 적어 제출하자, 바로 교무실로 불러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해온 피아노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던 나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주일 만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었다. 담임은 자기가 권하는 진로를 선택하게 한 뒤에도 책임감을 느끼는지, 지금까지도 간섭을 해오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담임한테 잔소리를 듣는 날이면 그 날은 ‘기분 더러운’ 하루가 된다. 오늘도 당첨인 셈이다. 그 여운은 하교 후에 간 독서실에서도 계속 남아있었다. 공부 따위가 될 리 없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독서실 근처의 평소 다니는 교회로 갔다. 2층에서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불 꺼진 학생 예배당은 조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 그랜드 피아노가 빛나고 있었다. 언제든지 와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 이 점이 내가 이 교회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점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회를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연주가 점점 과감해지고, 생기를 띠면서 알 수없는 희열감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객석을 돌아보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어, 엄마.......”

 

엄마가 예배를 마치고 나왔는지 손에 성경책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앙다문 입에서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희원아, 엄마랑 오랜만에 외식하러 갈까?”

 

 

엄마가 수저통을 열고 수저를 놓아주셨다. 그런데 나에게는 젓가락 한 짝과 포크 한 개를 건네주셨다.

 

“......엄마?”

 

엄마는 알 수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지금의 너야.”

 

“......?”“희원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젓가락으로 먹으려면 젓가락 두 짝을 사용해야해. 지금처럼 젓가락 한 짝과 포크로는 먹을 수가 없을 거야. 그런데 넌 지금 이런 상태로 먹으려 하잖니.”

 

이제야 엄마가 말하려하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고개가 저절로 떨구어졌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 그리고 더 이상 널 속이려 하지 마렴.”

 

어느 새 젓가락 한 짝 옆에는 새 젓가락 한 짝이 빛나고 있었다.

 

오하경(전주근영여고 1학년)

 

 

◇도움말

 

늘 자신의 진로와 현실의 입시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단편 소설로 엮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 의미있게 생각된다. 또한 고민의 해결을 위한 자기 자신만의 사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다각적인 시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점이 높이 평가 한다.

 

임진모(전주 근영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