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공무원의 숫자부터 줄이는것이 급선무이겠으나 공무원들의 완강한 반대가 두려워 악역을 자처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2천년전에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민주주의 가장 큰 병폐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있다고 갈파한 적이있다. 어리석은 대중들이 우선 듣기에 좋은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거나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의 평등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을 지적했다.
사회나 국가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아닌 당장 듣기에 좋은 정책에 현혹되는 대중을 경계했다. 키신저의 지적도 바로 국민들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지도자들이 현대와 와서 너무 많다는것이다. 그의 지적은 오늘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도 무방하다.
국가적인 어떤 목표나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정치가가 아니라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가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며 역사적 관점에서 오늘의 문제도 진단해야 하는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의 행적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곤경에 처한 영국에게 독일의 나치정부는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제의했다. 영국 국내에서도 나치와의 협상을 지지하자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처칠 내각의 핼리팩스 외교부 장관까지도 나치와의 협상을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처칠은 그 모든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오직 무조건 독일의 항복만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처칠에게 보여진 독일의 나치정부는 도저히 용서할수없는 범죄집단이었다. 융통성이 전혀 없이 원칙만을 고집했던 처칠의 주장이 옳았음은 역사가 증명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처칠은 선거에서 졌지만 그의 명성에는 하등의 금이 가지않았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정치 포퓰리즘을 극히 경계해야 할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