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이 되어서야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시작은 스물 둘이었다. 나는 헌책을 지게로 사다가 읽었다. 홀로 문학 공부를 한지 13년 만에 시인이 되었다. 나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사서 읽다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 나는 정말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일찍 선생이 되었기 때문에 선생 이외의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무엇이 되어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늘 중요했다.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대학 갈 생각을 안했다. 대학을 가면 초등학교 선생 외에 다른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지금이 좋다. 이따금 사람들이 “아이들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나는 지금이 좋아요.”
나는 지금 강연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그림을 보며, 영화랑 놀면서 내 맘대로 산다. 강연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하기 싫으면 절대 안한다. 나는 지금도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없다. 사람들이 나를 ‘섬진강 지킴이’라고 한다. 나는 펄펄 뛴다. 내가 무엇을 지킬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나더러 환경운동을 한다고 한다. 나는 또 펄펄 뛴다. 나는 근본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나를 고집하거나 절대 무엇을 주장하거나 그 누구의 삶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그럴 힘을 주었는가. 누가 저들더러 그러라고 했는가. 나는 내 삶을 내가 산다.
수능이 끝났다. 냉정하라. 이제 선택하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골라라. 좋아 해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잘한다. 그러면 사회에 나가 내 몫이 생긴다. 늦고 더디고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찾아라.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평생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덫’이 될 수도 있다.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