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진드기’로 불릴 만큼 집념이 강하고 한번 마음 먹으면 꼭 관철시키는 의지의 ‘조선공학도’다. 진드기란 말은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끈기와 의지를 갖고 착 달라붙어 예산을 요청하고 사업을 설명하던 것을 두고 붙인 별명이다. 당시 “강창구한테 걸리면 피곤하니까 피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산 역사다. 서울대 조선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선박해양공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선박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조선산업을 전공하게 된 것은 1972년 현대조선이 세워질 무렵 ‘앞으로 조선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방송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뒤 한국기계연구원 선박해양공학연구센터 연구부장과 단장, 한국해양연구원 대형위그선 추진기획단장· 실용화사업단장을 역임했다. 1984년 소형선박 조종시뮬레이터 개발 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고성능 시뮬레이터 개발의 시초를 닦았다. 서해훼리호와 프린스호 사고 때 사고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는 세계 첫 위그선 상용화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주)윙쉽중공업과 (주)윙쉽테크놀러지를 창업해 위그선 설계제작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의 표현 대로 9부 능선을 넘었다.
강 대표는 남원 사매면에서 태어났지만 학교는 군산에서 다녔다. 금강초등학교와 군산중·고를 나왔다. 부인 김연희 여사(56)와 1남1녀를 두었다. 아들과 딸, 사위가 부친 사업을 돕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아들 병재(30)씨는 대전외고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왔다. 설계팀장을 맡아 부친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 수능시험 만점을 기록한 수재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딸 민지(28)씨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사위도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의 ‘강압’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모두 스스로 택한 길이라고 했다.
위그선의 탄생과 현재, 미래를 담은 ‘하늘을 나는 배 위그선’을 저술했고 한국기계연구원 최우수연구상을 수상했다. 산업포장과 국무총리, 장관상이 수두룩하다. 한국해양환경공학회 회장,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