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碑身·비석 몸체)에 ‘덕진공원지비’(德津公園之碑)라고 적힌 이 비석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세워졌다. ‘공원 겸 공설운동장’이었던 ‘덕진운동장’ 건립(1929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당시 운동장에는 야구장과 육상경기장, 정구장 등이 있었으며, 1949년 전북대가 설립되면서 그 터가 학교로 넘어갔다.
(사)체육발전연구원이 펴낸 ‘실록전북체육사’를 보면, ‘덕진운동장’은 1910년대 중반 현재 전주 금암동과 덕진동 덕진지(德津池) 일대 잡종지에 만들어졌던 간이 자전거 경기장 부지를 확장, 조성한 것이다.
“무릇 국민의 교양은 국운이 융성하고 번창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교양은 신체를 강건히 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데 있다. (중략) 시내의 유지 미야자키 기치조(宮崎吉造)씨가 일찍이 공익 사업에 힘써 오던 터에 5000원을 쾌척해 광장을 만들고 각종 도구를 설치했다. 전 부경 박기순씨도 (중략) 3000원을 희사해 연못 둘레에 석축을 쌓고 다리를 설치해 넓은 도로를 개설했다.”
비석 받침돌에 ‘덕진운동장건설비’라고 새겨진 이 비문은 당시 전주읍장 ‘후지다니 사쿠지로’가 썼으며, 여기엔 운동장 조성 배경과 더불어 운동장 건설에 기여한 일본인 미야자키 기치조와 ‘친일파’ 박기순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담겼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친일 잔재 청산’ 바람이 거세지면서 비석은 수난을 겪었다. 2003년 모 시민단체는 받침돌에 시멘트를 발랐고, 이후 누군가는 빨강 페인트칠을 했다. 현재 시멘트는 벗겨졌지만, 페인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인철 (사)체육발전연구원장은 “재산을 기증한 박기순이 친일파는 맞지만, 비석 자체는 일제 착취와 관련이 없다”며 “외려 전주 체육 발전을 위해 ‘덕진운동장’ 조성에 앞장섰던 당시 전주면 부면장 박정근은 전주신흥학교 교감 출신으로 민족주의자였으며, 비석 자체도 예술성뿐 아니라 도시 계획과 스포츠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북대에는 이 비석을 관리하는 전담 부서가 없다. 다만 전북대박물관 이종철 연구사는 “비석을 넓은 의미의 유산이라고 전제할 때 친일파 이름이 (비문에) 들어갔다거나 페인트가 뿌려진 것 자체도 역사의 산물”이라며 “연구자 입장에서 이 비석은 기록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