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깨를 다독여 줄 때

▲ 노서운
K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만을 상대하다가 어른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어느 날 강의를 하려고 가방에서 교재를 꺼내려는데 준비한 자료를 통째로 집에 두고 온 걸 알았다. 당황한 나는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료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남편이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동안 학생들 앞에서 시간을 떼우는 일만 남았다. 망설이다가 초등학교 때 있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가 70년대였다. 학교에서는 호국의 달 6월이면 어김없이 반공웅변 대회를 열어 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은 무대 위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담력을 쌓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 내게 웅변을 하라고 권하였다. 어머니는 직접 원고를 써 주시고, 계란 노른자에 식초를 타서 목소리엔 극약처방이라며 먹으라고 코앞에 갖다 댔다. 지독한 냄새를 참고 마시며 열심히 연습을 하여 드디어 무대에 서게 되었다.

 

‘쿵쾅 쿵쾅’ 큰 북소리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백개의 까만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아 아찔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게다가 당황한 나머지 그제서야 준비한 원고마저 두고 올라온 걸 알았다.

 

“여러분……” 첫 외마디를 시작으로 다음 원고가 생각이 나지 않자 멍 하니 관중을 바라보다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런데 모든 웅변이 끝나자 사회자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오늘 원고 내용을 까먹어 도중에 내려간 노서운 학생에게 결과가 나오는 동안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관중들의 박수 소리에 용기를 얻어 준비한 원고를 꼭 쥐고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단상 위에 원고를 펼쳐 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날의 시상식에서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지만, 사회자의 배려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어 웅변을 마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남편의 핸드폰 문자가 도착했다.

 

‘강의실 앞에 도착’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강의 자료를 받아 들고 강의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매순간 우리는 삶의 무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연설을 하고 있는 연사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실패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 삶의 무대가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 누군가 어깨를 다독이며 어린 연사에게 용기를 준 사회자처럼

 

“다시 한 번만 해봐. 기회를 줄게.”

 

하며 가만히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어머니가 써 준 원고가 아니라 내가 준비한 원고를 들고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성큼성큼 강단으로 오른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치던 어린 연사의 꿈을 이루게 해 준 이 소중한 시간이 주어짐에 깊이 감사하며 자신감을 찾아 무대로 오른다.

 

 

*수필가 노서운씨는 2008년 <수필과 비평> 으로 등단했다. 현재 군산 이삭 어린이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