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얼굴없는 천사가 다녀갔다. 벌써 12년째 선행이다.
세밑 추위를 녹이고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익명의 독지가는 매년 이맘때 비슷한 장소에 돈을 놓고 갈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올해는 20일 오후 12시 5분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옆에 주차된 차량밑에 놓고 갔다. 현금과 돼지저금통을 합해 5024만2100원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십시오. 힘 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메모지도 함께 나왔다. 12년 동안 놓고 간 금액을 모두 합하면 2억4744만6120원에 달한다. 해마다 그렇듯이 주민센터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화단에 박스가 있으니 가 보라"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이제 얼굴없는 천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전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전주 주민의 인정을 널리 알려 전주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전주시 경원동 창작소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전주시도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에 '얼굴없는 천사의 비'를 시민의 이름으로 세웠다. 또 노송동 난민촌 공터에서는 '제 1회 천년전주 천사마을 천년사랑 축제'가 열려 선행과 나눔의 고귀한 뜻을 기렸다.
2000년 5월부터 시작된 선행은 12년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 기부자의 뜻을 더욱 거룩하게 한다. 누구인지 알기 위해 일부 언론에서는 잠복까지 할 정도였다. 작은 선행에도 호들갑을 떠는 세태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게 기부행위다. 우리 사회는 계속된 경기불황에다 극심한 양극화로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다. 20:80 사회에서 1:99의 사회가 되어 분노가 난무한다. 사회지도층과 부자일수록 하나라도 더 움켜쥐려 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게 대세다. 공동체 의식과 배려가 아쉽다. 그런 가운데 접하는 이런 소식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선행이 있어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기부행위가 몇몇 개인에 그칠 뿐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밑에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 더욱 추운 법이다. 돈의 적고 많음을 떠나 마음으로 부터 조그만 기부라도 이어졌으면 한다. 해마다 이맘때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름답고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