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변두리 시골의 5일 장날이다. 특별히 사야할 물건도 없으면서 장이 서는 날이면 주섬주섬 챙기고 자주 5일장에 나간다. 시끌벅적한 시골 장날은 볼거리가 많다. 사람 사는 맛이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텃밭에 심었을 것 같은 몇 가지 채소를 놓고 양지쪽에 앉아 파시는 어느 할머니의 얼굴은 초겨울 찬바람을 쐬어 빨갛다.
주인에게 끌려나와 얼마 후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팔려 어미 곁을 떠나야 하는 강아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어 댄다. 시골 5일 장날은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나는 좋아한다. 슬쩍 시장 구경이나 하고 올 요량으로 나섰는데…….
어느새 내 손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묵직하게 들려 있다. 늦서리를 맞고 몸살을 앓기 전에 주인의 손에 들려 나온 연한 고추도 샀다. 호박죽을 쑤어 먹으려고 누렇게 늙은 호박도 샀다. 땅속 깊이 굵고 통통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뽑혀, 이제 세상 구경을 나온 고들빼기도 한 움큼 샀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싱싱한 조기가 왔어요.'하는 장사꾼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속아 한 무더기 샀다. 기웃기웃 구경을 하다 보니 내 손에는 갖가지 싱싱한 생선이나 채소들이 들어 있는 검은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비닐봉지가 꽤 많이 들려 있다.
시골 장날이면 빠지지 않고 어김없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몸에는 고무로 만든 옷을 칭칭 감고 엎드린 채, 배로 기어 다니며 장날의 주인공처럼 가냘픈 음악소리로 시선을 끌며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전이던 지갑 속의 작은 돈이던 서슴없이 내준다. 오늘은 양손에 물건이 무겁게 들려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외면하였다. 내 두 손에 물건들이 들려있어서 줄까 말까 마음은 갈등을 했지만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와 버렸다.
그냥 집으로 돌아 온 탓에 마음은 편치 않다. 시골 5일장에서 금방 사온 싱싱한 채소와 생선으로 가족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시장 바닥을 누비고 다니며 지나는 행인의 동정을 구하던 그 사람의 눈동자가 자꾸 생각났다.
내 어릴 적, 이른 아침 식사 때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며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거지들이었다. 어머니는 언제 보셨는지 기다렸다는 듯 작은 상에 두어 가지 반찬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팔팔 끓는 국을 챙겨 내다 주셨다. 어머니는 아침에 찾아 올 거지의 몫까지 넉넉하게 밥을 하셨던 걸까?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낸 것을 본 적이 없다.
들마루에 걸터앉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치우고 말없이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하고 가는 거지를 자주 보았다. 어머니는 늘 그러하셨다. 어머니가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 준 덕일까? 지금 우리 남매들이 잘 살고 있다.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자랐기에 나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오늘 시골 장에서 본 그런 사람들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내 지갑의 무게를 덜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외면하고 돌아 와서 내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