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 우리들의 마음도 괜스레 움츠려 든다. 이럴 때일수록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듯 이웃 간의 온정의 나눔이 마냥 아쉬워진다. 금년에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금 39억을 목표로 다양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고 구세군을 비롯한 종교단체 및 사회단체도 모금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북의 경우 주민 1인당 소득이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기부열정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들은 예로부터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아름다운 풍습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업화로 물질적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곤궁한 사람에 대한 보살핌의 인정이 희박해지고 나눔의 정이 메말라버렸다. 범지구적으로 기아아동구제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아동기금(UNICEF)에 대한 기여도에서 우리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 많던 나눔의 미덕을 누가 먹어버렸을까? 세상을 삭막하게 만든 미운 입들을 몇 가지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경제성장 지상주의 시대에 절대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다 보니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 신경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점과 압축성장과정에서 모두에게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기 때문에 가난은 국가나 사회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나눔과 베품을 위한 투명하고 공신력있는 절차와 체계적인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우리의 나눔 및 기부행태는 다분히 일회적이고 즉흥적이었다. 연말연시에 소나기처럼 성금을 내고는 그 이후로는 가뭄에 콩나듯 기부행위가 이루어지는 천수답식의 기부문화가 관행으로 정착되어왔다. 연례적으로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나눔행복지수가 100℃ 이상이었는데, 12월 초순 현재의 나눔행복지수가 겨우 0.8℃에 머무르고 있음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기부선진국에 비해 모금에 관한 규제가 엄하고 기부자의 소득공제 혜택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는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가 기부행위의 주요 동기로 작동한다. 부유층일수록 조세제도가 기부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게 된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모금경비 및 관리운영비를 전체 모금액의 10% 이내로 제한하는데 비해 기부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20% 수준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가난과 곤궁에 대한 인식론적 혼동과 제도적 결함 때문에 우리의 기부문화가 저급한 것도,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인 양극화현상이 심화되면서 나눔문화의 정착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21세기의 새로운 화두 중의 하나가 양극화 해소이다. 양극화를 해소함에 있어 정부의 복지예산 지출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부족분은 금품이나 재능의 나눔이라는 온정의 미덕으로 메워져야 한다.
나눔과 베품의 공동체 의식과 올바른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먼저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가난과 곤궁의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 있다기보다는 제도와 정책에도 일부분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곤궁에 빠진 자를 도와주고 인정을 베푸는 마음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이 절대 필요하다. 사회적 기부란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서도 함께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의 표현임을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