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 보다 귀때 하나가 작다.)
김유정의 '봄봄' 첫 장면입니다. 화자인 '나'는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3년 7개월 동안을 데릴사위의 머슴으로 살아오다 성례를 시켜달라는 의도에서 꺼낸 말이었지만, 일꾼으로 더 부려먹기 위해 장인은 점순이의 키를 이유로 혼인을 미루는 장면입니다.
새해 임진년, 부족하나마 경찰의 수사주체성이 명시된 형사소송법과 대통령령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내사와 수사 등 법령의 해석을 둘러싸고 경찰과 검찰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급기야 검찰의 내사사건을 경찰이 접수거부한 일을 두고 기관간의 싸움과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명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아니한 무책임한 양비론이나 힘겨루기, 나아가 다른 국가기관에 대놓고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독선적 비난만으로는 결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검찰의 수사 인력은 7112명(검사포함)으로 경찰의 수사 인력 2만3043명(수사경과자) 대비 31%에 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원부서 및 교통사고조사인력 등을 제외하면 수사, 형사에 실제 종사하는 현원은 1만3230명에 불과합니다.
검찰에서 접수하였음에도 이를 경찰에 이첩한 사건은 작년 한 해 총 10만2638건에 달합니다. 이중 문제가 되고 있는 내사사건은 8321건(내사 439건, 진정 7882건)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위 내사 지휘되는 8321건을 제외한 9만4317건인 92%의 사건은 현재와 같이 검찰이 접수했던 사건이라도 경찰이 수사를 합니다. 다만, 범죄혐의가 인지되지 않은 '내사사건'은 이제부터 검찰 스스로 하면 된다는 것이죠.
경찰대비 31%에 달하는 7112명의 수사 인력을 보유한 검찰이 8321건을 처리하지 못하여, 다시 말하면 1년에 1인당 1.16건의 업무가 과중하여 검찰 업무가 마비된다는 주장은 참 민망한 비유이지만, 점순이의 키를 이유로 일을 더 부려먹기 위해 혼례를 미루는 장인의 생떼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구체적 근거규정 없이 검사의 보조자의 입장에서 이첩 받아 수사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관행은 국민들께서 검찰에 사건을 처리하여 달라고 요청하신 민원을 일방적으로 경찰에 이첩시키는 것으로서 특정 수사기관을 선택한 국민의 의사에도 명백히 반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금번 경찰의 내사지휘 접수거부로 도민 여러분께서 전혀 피해보시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검사가 직접 처리함으로써 보다 합리적 처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경찰에 비하여 결코 업무량이 많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김유정의 '봄봄'은 해학적 표현 속에 몇 번을 읽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낙천성이 깔려있습니다. 결국 '나'는 '장인'과 화해하고 일터로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이 소설속의 '나'는 결국 점순이와 결혼하여 그 마을에 살았으며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해피엔딩이지요.
도민 여러분! 60여년만에 수사의 주체로서 권한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도 부여 받은 우리 경찰!! 아직도 혼례를 치러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