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청소년 자살, 국회의원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 소값 하락 등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 여러 문제들을 종교계 지도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새해를 맞아 본보는 도내 종교계 지도자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자리를 마련했다. 햇살이 적당하게 비추는 시간이었다. 4일 오전 10시 천주교 전주교구장인 이병호 주교(72)를 찾았다. 전주 남노송동 천주교 전주교구에 들러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의) 기본 취지가 뭐요?" 안부를 묻고, 날씨를 묻고, 차분히 질문을 이어가려던 기자는 잠시 당황했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언젠가는 주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주교는 "이런 저런 일에 관심을 쓰는 위치에 오래 있다 보니까, 한 신앙인으로서 다른 처지에서 살다가 삶을 마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일반적인 바람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해마다 신년사를 통해 교단 안팎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셨습니다. 인터뷰 하기 어려운 분께 새해 값진 말씀을 들으면, 더 뜻깊을 것 같습니다.
△ 나같은 사람은 항상 성서를 중심으로 해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일반적인 말을 하면 한계에 부딪쳐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일반적으로는 "복 많이 받으십시요." 혹은 "좋은 일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지나가는 말이지, 정말 의미있는 말일 수는 없어요. 어차피 좋은 날만 있을 수만 없는 일이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일', '복'이 무엇일까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된다, 그런 이야기죠.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 새벽 4시20분에 자명종이 울려요. 우리 미사가 새벽 6시니까, 성당에 들어가면 한 시간 남짓 시간이 있죠. 그때 성서를 외우는 것으로 하루 묵상을 하는데, 외우는 것만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일은 없어요. 미사 지내고, 아직 덜 외워진 것이 있으니까 프린트 해 가지고 또 외워요. 또 한 시간 반쯤 치명자산을 돌고, '아름다운 순례길'을 한 달에 한 번쯤 가요. 250km 되잖아요. 하루에 10구간으로 나눴는데, 한 구간 가는데 24~25km 돼요. 7~8시간 걸어야 하는 거요. 걸을 때도 성서를 프린트 해서 외우면서 다녀요. 그러니까 훨씬 의미가 있어요, 나한테는. 그냥 걷는 것하고 전혀 달라.
-요즘 학교나 가정이 깨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 이것도 다, 물질생활과 관계돼요. 어머니가 집에 있을 수 있으면 최선이지. 아이가 학교에 갔다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신다 ? 나는 그런 날이 한 번도 없었어요. 책 보따리를 마당에 던져두고 논밭에 나가 어머니 냄새 맡고 와야 돼. 어머니 근처에만 가도 공기가 달랐어요.
그런데 요즘 맞벌이 많잖아요. 집에 와도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의 공허감은 어떻게 메워지겠어.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해.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가 불가능해요. 부부관계도 많이 해성해성해질 우려가 있고. 모든 관계는 거기서 출발해요.
-사회 문제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속(俗)이 걱정하는 성(聖)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 ㅋ英맛� 현안에 대한 종교의 참여·개입 범위로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물론 교회는 절대 정치집단이 아니여. 자본주의 초기에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정도가 너무 지나치니까, 그때부터 교회가 개입해서 소위 정� ㅋ英맛岵�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들고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 발언하기 시작했지. 오늘날에도 교회가 이런 쪽 관여를 하려 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해요. 그런데 이 말의 앞·뒤를 잘 생각해야 돼.
예수를 궁지에 빠뜨리려는 적대자들이 물었어요. '카이사르(로마황제)에 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당시 이스라엘을 로마가 통치하고 있었으니) 세금을 바치면 민족을 배반하는 게 되고 하지 않으면 형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고, 진퇴양난이었다고. 그래서 예수님이 '세금으로 바친 동전에 무엇이 그려져 있느냐'고 물었어. '카이사르의 얼굴입니다.' 답변했지. '그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게.'라고 했던 거요, 신앙적 가르침으로.
그런데 카이사르의 모상 이전에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나 본래의 모습을 망가뜨리면서 살고 있으니까, 하느님 이름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요. 결국 이 세상 모든 권위는 자연법에 기초하고 있어요. 자연법은 달리 말하면 양심법이요. 실정법도 이것을 어기면 아닌 거지.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더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면, 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된 거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시민들이 갖는 정치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졌고, 선택에 대해 혼란을 야기하는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
△ 즉흥적으로 좋다는 것을 선택하면 어떻게 되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그거요. 제일 큰 문제는 국민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사리라든가 연줄에 의존하는 거지.
요즘에 1%를 위한 99% 희생이라는 말이 많이 떠돌잖아요. 결국 돈만 보고 선택하면, 이렇게 되기 쉽다는 거요. 우리나라가 인구 대비 자살률이 가장 높잖아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이 되면, 행복지수가 더이상 안 올라가. 그것을 벌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여지니까. 정말로 인생을 저 깊이부터 즐길 수 있는 감각이 없어져. 거기에 매달리다가 인생 끝나고 마는 거요. 그러니까 이제는 무슨 과제가 남았냐. 국가가 배분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욕심의 한계를 그을 줄 알아야 되고.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요. 그게.
-앞서 언급하신 것과 관련해 지역 언론의 책임감이 큰 것 같습니다.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 특별히 지역 언론은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야지. 그냥 막연하게 말고. 사람들 깊이 들어가서 만나보면 자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학교 왕따, 환경 문제…. 특히 우리가 자연을 이런 식으로 훼손 더하면 이제는 복원이 불가능해. 인류 멸망이 아주 앞으로 오게 돼요.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