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花巖寺)

김명웅 …재경완주군향우회장

 
우리가 이 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폐허가 된 돌담길 에서도 , 깊은 산자락에 묻혀있는 자그마한 사찰에서도 심지어는 사람의 발길조차 닿아보지 않았을 만한 곳에서도 우리의 역사와 전설이 있었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삼국시대 이후로 정� ㅀ姸─ㅋ英륫ㅉ��ㅋ瀯� 예술과 윤리 전반에 걸쳐 크나 큰 영향을 주었으며 민간신앙과 공존하면서 유교를 중시하는 정권의 탄압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해왔고 평민들에게는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문화가 수천년동안 우리의 정신에 녹아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와 관습을 이야기할 때 불교를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흐름 속에 국보로 지정될 수 있는 대다수의 것 들은 제작연대와 기법이 우수하고 오래되었거나 또한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어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데 필요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지정대상이 되는데 이번에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절에가면 우리가 상상하고 느끼는 일주문도 당간터도 사천왕문도 그리고 그 흔한 탑 하나도 없는 일반 절에서 형식적으로 갖추어야할 것들을 과감히 생략하여 소박하고 아담해서 절같지도 않지만 너무나 눈에 익은 것같이 편안하게 생긴 절이 하나있다.

 

이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일교국사가 창건하고 정유재란 이후 1605년 선조때 중건한 화암사라는 작은 절이다.

 

이절에 가면 처음 만나는 것은 우화루(雨花樓)!, 이 우화루는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자연석을 주추로해서 그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앞면을 2층으로 하고 뒤쪽은 축대를 쌓은 공중누각형인데 앞에서는 2층이고 뒤에서는1층으로 해서 자연적인 지형의 흐름을 따라세운 보물 662호다. 또한 부처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보물 663호인 극락전(極樂殿)이 있으며, 철종 때 봉안하였다는 후불탱화가 있고, 광해군 때 주조하였다는 크기가 140cm 정도되는 동종이 전북 유형문화재 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또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고 설총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는 기록도 있는 천년고찰이다.

 

이러한 역사와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화암사의 극락전의 건축양식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양식이라고 하여 2011년 11월에 문화재청에서 국보 316호로 승격 지정했다. 우리고장에 국가적인 유물이 한점 더 추가됐다는게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암사의 아미타불을 안치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多包式) 맞배지붕(보편적으로 가장 간단한 형식으로 주심포양식을 많이 쓰며 처마양끝이 조금씩 올라가고 지붕의 측면이 노출되는 양식)으로 이번에 국보지정 예고된 것은 공포양식(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여 안정감을 주기위해 기둥으로부터 처마까지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위한 양식) 중 하나인 하앙식(下昻式)기법으로 이는 처마의 무게를 받치는 부재료를 하나 더 설치해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처마 길이를 더 길게 뻗을 수 있게하는 양식으로 기품을 더할 수 있게하는 기법인데 시공의 어려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많지않다하여 국보로 지정 된 것이다.

 

이 절을 찾아 갈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찰을 떠올리면 실망하게된다

 

왜냐하면 주변엔 논과 밭 그리고 농가 몇채만이 띄엄띄엄 한적하게 있을 뿐이고 그 사이로 난 자그마한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산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는데 작은 개울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들이 사람의 마음을 정겹게 만들어 주고 푸른나무들의 숲은 또 다른 이채로움으로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해준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 아직도 산골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절은 절이라기 보다 절간이라고해야 어울릴만한 곳인다.

 

 

△ 김명웅 회장은 전주고,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했다.1990년도부터 무역센터 공항터미널 컨벤션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