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 이야기는 내 뇌리에 경구(警句)처럼 박혔다. 서점 한 구석에서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시집들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손바닥으로 시들을 받친다.
그 "작은 물결이 /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김기택 '멸치' 중에서) 불러 일으키는 경이로운 경험을 목도하게 된다.
초판이 나온 것이 1999년. 안도현 시인이 엮은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나무생각)이 2011년 개정판으로 나왔다. 안 시인이 다시 읽고 싶어 시 71편을 골라 엮은 이 책은 사람과 문화에 대해 투명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둔감한 독자들을 깨운다.
이 책이 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래서 일 것이다. 세월의 무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초판 낼 때의 첫 마음을 그냥 간직하고 싶어서 짧게 붙인 해설은 손을 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시집은 옛 정취 말 그대로 애잔하다.
안 시인의 해설은 또 다른 시공부다. 가령 오규원의 '한 잎의 女子'를 "읽고 나서 한 번쯤 자기식대로 직유법 연습을 해 보지 않은 문학도가 있다면 그는 시인되기 영 글렀다. 비스켓 같은 女子, 소주 같은 女子, 오징어 빨판 같은 女子, 촉촉한 빗물 같은 女子……."
그동안 안도현이 사랑하는 시들은 아침 화장실에서 한밤중 침대 머리맡까지 나를 따라 다녔으니, 안 시인이 이 사실을 알면 질투께나 했으리라. 그리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을 나도 알게 되었다.
'열 몇 살 무렵, 문학에 눈뜨기 시작할 때 좋아하던 시', '스물 몇 살 무렵, 문학청년 시절에 좋아하던 시',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시', '내가 사랑하는 감동적인 시',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 71편을 안 시인은 "오직 내 마음 속의 '명시'들일 뿐"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었을 때 잔잔한 떨림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안에 실린 고재종 시인의 시처럼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신출(神出)의 고향"으로 초대하오니 부디 거절하시지 말길 바란다.
△ 이영종 시인은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시 부문)로 등단했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며,호남제일고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