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경리 작 '토지'에는 반가 한옥이 잘 묘사돼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참판댁의 영화를 지키려던 윤씨 부인이 혼외 아들인 김환을 내다보던 안채의 안방, 최치수가 어머니에 대한 의혹·분노를 키우며 딸을 냉랭하게 대하던 사랑채, 최치수의 부인이 머물던 별당, 윤씨 부인의 아들이지만 신분을 숨기며 행랑채에서 기거했던 김환. 한옥에는 이들의 삶이 녹아있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 한옥은 건물을 이루는 구조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채와 마당
반가를 중심으로 한옥의 살림집은 채와 채로 건물을 나눈다. 채 사이에는 마당이 있다. 마당 사이에는 문이 있다.
채와 마당은 기능과 성격에 따라 달리 사용했다. 가장 안쪽부터 여성의 거주공간인 안채, 안채의 창고로 쓰인 중간채,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행랑채(머슴채 포함)가 위치했다. 부속건물로 별당채, 사당 등이 있다. 마당은 외부공간으로 건물에 따라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별당마당, 사당 마당으로 구분된다.
안채는 안방, 건넌방, 안대청과 부엌, 곳간으로 구성된다. 안마당은 가사노동을 하는 공간으로 밖에서 보이지 않게 짓는다.
전주시 전통문화연수원 김순석 부원장은 "안채 부엌의 바깥 벽면에는 송화가루를 발라 음식냄새를 잡기도 했다"면서 "우리 조상의 사치는 대단히 실용적이었다"고 말했다.
사랑채는 남자의 거처로 손님을 맞는 곳이다. 대청과 누마루, 침방과 서고 등이 포함된다. 사랑마당은 대문과 직접 연결돼 안채와 달리 개방적이다. 눈에 잘 띄지 않게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지름길을 만들어 부부의 소통을 도모했다.
행랑채는 대문 양쪽에 이어진 건물로 하인들이 거주했다. 곳간, 광, 마구간, 가마고 등도 있다.
별당은 주로 자녀와 노모가 기거했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신 건물로 보통 안채의 동북쪽에 있다.
△안방마님의 사생활 보호
전통 반가에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바로 대문이다. 문은 크기에 따라 대문·중문·소문이 있다. 솟을대문은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이다. 가마나 말이 있는 집에서 지었으며, 부와 권세를 상징한다. 문의 양 옆 기둥 수에 따라 일주문, 사주문 등으로도 구분한다. 일주문은 문을 붙들고 있는 기둥을 한 줄로 배치했을 때를 일컫는다. 주로 절에서 많이 쓰인다.
대문을 지나 건물에 다다르면 기둥이 보인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칸이다. 기둥 모양은 건물의 기능을 알려준다. 관청 건물은 기둥이 둥글고 민가는 사각이다. 김순석 부원장은 "전주 동헌의 풍락헌을 예로 들면 앞에서는 7칸, 옆에서는 4칸이다. 풍락헌은 그래서 28칸이다"면서 "조선 말기 이후 민가에서도 둥근 기둥을 쓰기 시작했고 학인당이 대표적이다"고 설명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면 건물의 겉을 따라 다양한 마루가 있다. 마루는 5종류다. 처마 밑 용마루, 건물 안 방과 방 사이의 대청마루, 기둥 사이 툇마루, 기둥 밖으로 나온 쪽마루, 다락처럼 높이 올라간 누마루가 있다.
방안에 들어가는 문턱은 외부공기가 위로 들어와 감기를 방지하기 위해 높였다. 방 한 켠 작은 문의 밑 부분은 머름이다. 머름은 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해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이다. 방바닥에 앉아 문을 열었을 때 바깥에서는 얼굴과 상체 부분만 보이게 만들어 안방마님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시야를 확보하는 기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