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전주시 경원동 원불교 전북교구청. 고원선 원불교 전북교구장(66)은 맑은 얼굴로 두손을 합장하고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 질문지를 받아들고 꼼꼼히 답을 적어온 교구장은 "숙제하는 기분이었다"고 웃었다. 둥근 웃음이 번져 나갔다. 원불교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원상(一圓相·원)을 연상케 했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 "원불교 교도들은 하루 일과가 초등학생 시간표 같습니다. 아침엔 수양정진, 낮엔 보은봉공, 저녁엔 참회·일기 쓰기. 나는 평생 해온 대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부터 단전에 호흡을 넣고 기도합니다. 오전 7시가 되면 식사를 한 뒤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무를 보죠. 바쁜 틈틈이 원불교 '교전'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오전에 1시간, 오후에 1시간씩 읽습니다."
- 사회 곳곳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 스스로가 부처가 되게 하는 마음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종교는 '멈추는 공부'를 시킵니다. 화가 나는 순간에도 가만히 나를 돌아보는 것. 내 맘대로 안되니까 화가 나는 거거든요.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바닥나는 겁니다. 하지만 마음 훈련을 하게 되면 선한 기운이 물결 치듯 파장을 일으켜 세상에 밝은 기운으로 퍼져나갑니다. 긍정적인 걸 찾아 확대시키고 희망을 열어가는 거지요."
- 왜 원불교 교도가 되셨나요.
△ "5대 종갓집에서 그렇게 바라던 아들 대신 내가 나왔습니다. 집에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웃음) 남동생과 차별받는 게 불만도 들었고요.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옛날 어른들은 '또닥 방망이'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뭐든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게 한다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걸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원불교와 인연이 닿아 교도가 된다고 했을 때 물론 말도 못할 만큼 반대하셨습니다."
- 불교나 기독교·천주교에 비해 원불교 교리는 다소 낯섭니다.
△ "천주교·기독교는 역사가 2000년이 넘었고, 불교는 3000년이 넘었습니다. (교리를) 깊이는 몰라도, 대강은 알고 있죠. 반면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원불교를 창교하신지 원기 97년 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역사가 짧습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게 큰 가르침입니다. 마음 공부를 강조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하도록 했어요. 숯장수·엿장사에 고무신 공장까지 하면서 어렵사리 교단 살림을 꾸려 성장시켰습니다. 일각에서는 원불교가 '부자 종교'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지만요."
- 정부의 전통문화 관련 국고보조금이 원불교·불교 등에 편중 돼 다른 종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 "원불교의 국제마음훈련원 건립 예산안(428억)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올해부터 원불교 100년 성업의 날인 2015년까지 익산시와 전남 영광에 국제마음훈련원이 건립돼요. 이곳은 원불교 교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마음 공부하는 시설입니다. 전북 교도가 5만 여명(익산 군산 제외·2005년 인구 센서스 기준)에 불과한 작은 교단이라 더디게 발전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다른 종교와 다르게 여성 지도자가 계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 "원불교 교리는 파격적일 정도로 남녀 평등을 지향합니다. '지자본위'(智者本位) 교법으로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부처 또한 위력이 다 같지 않기 때문에 개개인 능력을 최대한 발현하게 합니다.
또 신정의례준칙을 만들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여성을 괴롭혀온 각종 허례를 대폭 간소화하기도 했습니다. 종갓집 종부로 매년 수십 차례의 제사를 치르던 어떤 할머니는 교전을 펴놓고 공부하며 감격에 겨워 통곡하시기도 했어요."
- 종교의 사회 참여에 대한 교계의 목소리는 어떻습니까.
△ "원불교를 창시한 대종사께서 '법륜'(法輪)을 통해 종교의 사회 참여에 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교리에서 종교와 정치를 수레바퀴에 비유했어요. 수레가 잘 굴러가도록 종교와 정치가 잘 협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엄부자목'(嚴父慈母)도 비슷한 취지의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엄격한 아버지 역할, 종교인들은 자비로운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결국 종교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 올해 전북 교구가 내놓는 주된 사업이 있다면.
△ "전북이 새만금 개발에 올인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막아지면서, 얼마나 많은 어류 생령들이 죽었습니까. 그래서 '새만금 특별 천도제'(3월25일)를 지내려 합니다. 중앙 교구청에 있을 때에는 군산에서 한 번 했고, 이번엔 부안에서 해보려 합니다."
- 임진년 맞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고, 우리 교단도 새로운 종법사를 선출하는 선거(9월22일)가 있습니다. 마침 경산 종법사께서 신년 법문을 통해 새해는 교단과 우리나라, 세계 주요 나라의 지도자가 새롭게 선택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도자가 지혜를 모아 방향을 잡아가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