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백장암 삼층석탑의 주악상

향비파 횡적 조각, 국내 음악변천사 한눈에6명의 연주자, 오늘의 국악실내악단 모습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탑으로 손꼽이는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 화강석으로 5m의 높이로 세워진 이 탑은 실상사의 또 다른 상징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이 창건하였다. 실상사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백장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탑은 그 아래 경작지에 세워진 탑이다. 기단 구조와 각 부의 장식조각이 특이하여 전형적인 신라 석탑과는 다른 형태의 석탑이다. 즉, 보통의 탑은 위쪽으로 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 데 비해 이 탑은 아래와 위의 너비가 거의 일정할 뿐 아니라, 높이도 1층만이 높을 뿐 2층과 3층은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색다르다.

 

기단부는 낮으며 4면에는 난간을 섬세하게 양각하고 있다. 탑신석은 매 층이 돌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그 남면에 문비를 중심으로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다른 3면에 보살상, 천왕상, 동자상 등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특히 2층 탑신 사면에 한국고대음악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할 수 있는 주악상이 조각되어 있다. 사면에 각각 2구씩 총 8구의 주악상은 화려함의 극치다. 필자가 1998년 탁본을 떠 학계에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이 탑의 주악상은 곳곳이 마모되어 있었으며 박판, 요고, 생황, 동발, 향비파, 횡적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박판은 기존의 전남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에 나온 박판보다 시기적으로 반세기 정도 빨라 가장 오래된 석조물의 주악상으로 평가된다. 또한 향비파는 삼국사기에 신라 삼현의 악기로 소개되어 있는데, 문헌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고대유물로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더욱이 서역계의 악기인 향비파와 횡적이 조각되어 있어 우리나라 음악변천사도 펼쳐놓았다. 다시 말해 우리음악이 서역을 시작으로 중국을 거쳐 들어왔음이 부분적이나마 이 유물에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악기는 일방적인 전수가 아니고 우리민족의 뚜렷한 민족성과 미의식으로 수용되었으며, '우리 식'으로 펼쳐짐에 따라 우리나라 음악발전의 한 축도 감상할 수 있다.

 

총 6명의 천인이 연주하는 악기들의 모습은 때로는 동적이고 때로는 정적으로 당대 음악상을 고스란히 부활시켜 연주하는 오늘날의 국악실내악단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지 않고 각 부재마다 자유로운 구조로 되어 있으며, 탑신 전체에 갖가지 조각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신라 후기를 대표하는 공예탑으로 최고의 걸작이란 극찬을 받고 있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