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 (코미디/ 90분/ 15세 관람가)
지난해 아줌마가 된 선배의 카카오톡에는 '초보 주부, 밥 해 먹기도 힘듦'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 아직 결혼을 안했음에도 선배의 말에 공감하는 건, 일하는 여자로서의 동질감일까.
그리고 보면 요즘을 사는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낳고 기르고, 이제는 밖에서 돈까지 번다. 한꺼번에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현대의 여성들.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이하 '하이힐')에서 바로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I don't know how she does it)'라는 원제처럼 슈퍼우먼 같은 주인공 그녀, 케이트(사라 제시카 파커). 케이트는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이자 집에서는 아이들과 남편 돌보기에 소홀함이 없는 주부다. 24시간을 꽉꽉 채워 써도 언제나 모자라기만 한 어느 날,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주어진다. 본사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 그러나 잦은 출장과 격무는 가족들을 점점 실망시키고 스스로도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가족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구태의연한 결론은 닳고 닳았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로 유명해진 사라 제시카 파커의 이미지는 '하이힐'에서도 그대로다. 영화가 보여주는 주인공의 고민도 그다지 공감되지 않고 잘 꾸민 그들은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표현은 워킹맘이지만 실제는 코미디인 것이 바로 이 영화인 것. 하지만 실제는 아닌데 묘한 측은지심은 작용한다. 적어도 '아이 때문에' '가족 때문에'라는 고민은 분명 우리의 그것과 똑같으니까 말이다.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범죄, 드라마/ 133분/ 청소년 관람불가)
1982년 부산.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일본으로 밀수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탕 하기 위해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익현은 탁월한 임기응변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형배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고 주먹 넘버원 형배와 로비의 신 익현은 함께 힘을 합쳐 부산을 접수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조직의 의리는 금이 가고 형배의 라이벌 조직 보스 판오(조진웅)가 익현을 유혹한다. 동생으로 여겼던 '넘버 투' 창우(김성균) 등도 이미 등을 돌린 상황, 과연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까.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한 때 유행했다는 클래식 갱스터 영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지극히 한국 스타일이다. 영화를 만든 윤종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홍콩에는 삼합회, 미국에는 마피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며 "우리가 홍콩과 미국 영화들이 담는 내용과 똑같이 갱스터 영화를 찍는다면 가짜가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을 '형님 문화'로 대변되는 우리 스타일로 그려냈다.
이야기는 둘째 치더라도 '범죄와의 전쟁' 출연진을 그야말로 단단하다. 어떤 비루한 스토리를 갖다놨어도 제대로 맞췄을 배우들이 포진한 것. 상황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는 익현 역의 최민식과 속내를 숨기고 기다리는 형배 역의 하정우, 그리고 조진웅, 김성균 등 조연배우들까지 빈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