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청자관악기 - 고려시대 청자로 만든 유일한 관악기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에 들어가 햇빛을 보게 된 부안 유천리의 각종 유물은 시대를 넘어서 고려청자의 빛깔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다. 곱고 세련된 유약과 부안땅에서 채취된 백토, 여기에 자연이 빚어낸 불 등으로 탄생된 고급 청자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청각적으로 우리 예술의 찬연한 미감을 전해준다. 도공의 치열한 예혼은 그 위에 투명하게 빚어졌다.

 

현재에도 이화여대 박물관 수장고에 소장돼 있어 일반인이 관람할 수 없는 청자 관악기는 그동안 미술사학계에서 도판으로 소개되었을 뿐 학계는 물론 한국음악사학계에서도 소개 조차 되지 않은 유물이다. 그러나 이 유물은 고려시대 청자에 생산된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관악기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부안군에서 발간한 『부안유천리 고려도자』에는 "속이 빈 8각관으로 지름 0.8센티미터의 구멍이 있어 관악기로 추정하였다"라고 한 줄로만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비록 유약이 녹지 않아 상태가 불량하지만 이 악기는 고려시대 전북국악사는 물론 한국음악사의 외형과 내실을 넓혀줄 유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고려시대 각종 주악도상에서 소개되지 않았으며, 본격적인 연구 또한 미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악기는 출토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관악기 유물이란 점에서 학계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파손되어 원형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취구가 있고 세로로 불 수 있는 관악기인 점, 그리고 피리에 비해 규모에서 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퉁소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 퉁소라는 명칭으로 전승되어 있는데, 시대에 따라 악기의 구조는 약간씩 달랐다. 특히 고려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 당악과 향당교주의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풍류문화에서도 한몫을 한 악기다.

 

퉁소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의 일종으로 현재는 그리 활발히 연주되지 않지만, 풍류객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가가 있었으며, 민간에서도 퉁소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애용되었던 악기다. 퉁소가 얼마나 널리 알려졌던지 바깥에서는 제대로 행세하지 못하면서 집안에서나 큰소리치는 사람을 일컬어 '방안퉁수'라고 하는 말까지 생긴 걸 보면 퉁소가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친근한 악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퉁소의 명인은 거의 모두 전북 출신이었다. 단소의 명인 추산 전용선과 맹인으로 이름을 떨친 편재준, 그리고 유동초 명인은 모두 퉁소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 전북에서 출토된 퉁소와 조선시대 퉁소 명인 대부분이 전북출신임을 감안한다며 퉁소란 악기는 전북과 불가분한 관계임은 자명해진다.

 

그리고 고려시대부터 전북에서는 퉁소를 사랑할만큼 수많은 악공이 전통음악 지킴이로 활동한 것을 상상만 해도 국악의 본향으로 전북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만큼 전북의 국악뿌리는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유천리에서 출토된 퉁소를 통해 고려시대의 화려했던 음악을 부활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