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의학상' 수상한 고 규 영 KAIST 특훈교수 "신개념 암 치료제 연구개발… 새로운 전기 마련"

▲ 고규영 KAIST 교수가 암 성장과 전이를 억제 시키는'이중혈관 성장차단제'(DAAP)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 고규영 KAIST 특훈교수와 본보 이경재 선임기자가 고 교수 연구실에서'아산의학상'수상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전북 출신의 고규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54)가 지난 9일 제5회 아산의학상을 수상했다. 신개념 암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혈관 생성 기전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30년 동안 기초의학에 매진해 온 세계적인 생명과학자다. 고 교수는 작년에 KAIST 특훈 교수로 임명됐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업적과 교육성과를 이루고, 그 전문분야를 앞서 이끌어 가는 교수 중에서 선정하는 최고의 명예직이다. 지난 22일 대전에 있는 KAIST를 찾았다. 인터뷰를 사양했던 그였지만 연구실을 찾은 취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연구하고 실험이나 하는 사람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냐, 상 받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며 겸손해 했다. 인터뷰 중에도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연구팀과 동료 교수들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아산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전혀 생각치 못했는데 큰 상이 주어졌어요. 연구팀이 노력한 덕분이지요."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매년 훌륭한 연구성과를 낸 의학자를 한명씩 선정, 시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임상과 기초의학 분야로 나눠 두 명에게 주고 상금도 1인당 3억원으로 증액한다. 국내 의학상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젊은 의학자를 격려하기 위한 '젊은 의학자상'도 신설할 계획이다.

 

 

-상금이 2억원이나 되던데 어떤 계기로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겁니까.

 

"신개념 암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암 성장과 전이에 필수적인 게 혈관신생인데 이를 차단하는 게 항암제입니다. 의학계에서는 혈관내피 성장인자(VEGF)가 혈관 신생의 주요 물질이라 여겨왔고 이 인자를 억제하는 항암제 아바스틴(Avastin)을 개발해 암환자에게 투여해 왔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어요. 이 아바스틴 투입시 안지오포이에틴-2(Ang2)라는 또 다른 성장인자가 급격히 증가해 혈관신생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지요. VEGF-A와 Ang2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이중혈관 성장차단제'(DAAP)을 개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지요."

 

 

-'이중혈관 성장 차단제' 개발은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평가받고 있는데 어떤 원리입니까.

 

"현재 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VEGF 차단제는 치료효과가 적고 내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 암이 생성된 실험동물에 VEGF를 투여하니 암 혈관에 Ang2가 과다 발현되어 내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근거로 VEGF-A와 Ang2를 동시에 차단하는 DAAP이라는 물질을 새롭게 디자인한 겁니다."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이군요. 기존의 차단제보다 얼만 만큼 효과가 있었나요.

 

"원천기술이지요. 한 스텝씩 전진하는 거라고 봐요. 실험한 결과 기존의 단독 차단제보다 암 성장은 2.1배, 전이는 6.5배 가량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 연구결과는 암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캔서 셀(Cancer cell)'의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고 교수는 그동안 Cell, Science, Nature, Blood, Circulation 등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에 1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논문이 '캔서 셀'에 게재됐을 때 세계적인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열악한 여건에서 굉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이 많았어요. 국가가 도와주고 운이 따라 실행한 것이지요."

 

 

-결국 암 억제는 혈관신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차단하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암은 혈관 있는 곳에 생기고 혈관이 없으면 크지 못해요. 영양분과 산소가 있기 때문에 암이 자라는 겁니다. 각막·망막은 혈관이 없기 때문에 암이 생기지 않아요. 당뇨도 오래되면 혈관이 생기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혈관신생이 안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등이 연구과제입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이 부문을 갖고 어떻게 차단하고 조절할 것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과학자들이 고 교수님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더 발전된 성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연구성과는 발표 즉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공유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는 기술이동이 빠르고 명멸이 심한 IT산업과는 달라요."

 

 

-연구성과물에 대한 소유권이나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장치는 어떻게 하나요.

 

"연구비와 기자재 등을 정부가 지원해 주기 때문에 KAIST에 소유권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기술 사용을 요구해 올 때 개발자는 중재역할을 하는 정도입니다. 지적재산권은 발표 전에 특허출원 등 절차를 밟아 놓아요."

 

 

-우리나라 연구비 지원은 어느 수준입니까.

 

"미국은 엄청날 정도로 지원을 많이 해주어요. 유럽은 복지에 투자를 많이 하고. 우리는 연구로 먹고 사는 나라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절대액으로 보면 많지 않지만 GNP 대비 R&D 지원규모는 높은 수준에 들어갑니다. "

 

 

-2010년엔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조혈모 세포가 뱃살 같은 지방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좀 해주시죠.

 

"한 분야를 줄곧 연구하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이 키워지고 상상력도 발전하게 되는데 우리 연구팀은 지방과 골수가 구조상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지방에도 조혈모 세포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백혈병은 골수의 조혈모세포(혈액줄기세포)가 병에 걸려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골수 이식으로 정상적인 조혈모 세포를 만들어 백혈병을 치료했다. 그러나 고 교수팀의 연구로 백혈병 환자 본인의 지방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연구내용은 국제학술지 '블러드(Blood)' 표지논문으로 발표됐다.

 

 

-지난 2006년엔 전북의대 박성광 교수팀과 공동으로 신장병 치료 가능성을 입증한 논문을 세계 최고의 신장 관련 학술지인 미국 신장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어떤 이론입니까.

 

"신장의 모세혈관 질환이 신장질환 진행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에 착안, 혈관형성촉진제인 콤프앤지원(COMP-Ang1)을 신장병 생쥐에 투여했더니 모세혈관을 대부분 재생시켰어요. 신장병 치료에 확기적인 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지요."

 

 

-백혈병 신장병 치료약을 기대하는 환자들이 많은 데요.

 

"논문이 발표되니까 곧 신약이 나오는 것처럼 인식되는 바람에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전북지역에서도 전화가 왔으니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세계적인 생명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시기는 예측할 수 없어요. 상용화에 대한 희망의 끈 만큼은 놓지 말아야 하겠지요. 자포자기하면 안될 테니까."

 

 

-오랫동안 암에 대한 연구를 해오셨는데 암은 왜 발병하는 겁니까.

 

"암은 생명체 때문에 생겨요. 암이 없으면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담배를 많이 피워도 폐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유전자 때문이지요. 암 걸릴 유전자는 피해야 합니다."

 

 

-감기약처럼 암 치료약도 개발될까요.

 

"사람마다 암 걸리는 원인이 다릅니다. 맞춤형으로 개발될 걸로 봐요. 이를테면 폐암이 담배 때문에 발병한 것이라면 그에 맞는 치료약이 개발되는 식이지요."

 

 

-암 치료를 위한 신약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요.

 

"민감한 사안이라 대답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정부와 기업 투자가 관건이고 고급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괜찮은 약 하나 개발해서 상용화하기까지 1조원 정도 소요됩니다. 우리 여건으로는 어려운 일이지요. 이런 기반을 잘 닦아놓아야 선진국으로 갑니다."

 

 

-혈관 성장의 비밀을 밝히고 신개념의 암 치료제 개발에 몰두해 왔습니다. 연구와 논문쓰기 등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데 이런 왕성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아침마다 새로운 생명현상이 보여요. 하고 싶어 했던 일이고 이런 일을 할 때가 제일 좋아요. 우리 몸과 직접 관련된 일이고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활동이라서 일하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스트레스는 받지 않나요.

 

"스트레스 많이 받지요. 우리 연구팀이 20여명 되는데 연구비도 확보해야 하고 과업도 진척시켜야 하고…."

 

 

-의대에 진학했는데 의사가 되지 않고 기초의학에 전념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스승의 말씀 한마디가 방향을 바꿨어요. 의대 본과 1학년때 조경우 교수(현 원광대 한의대 명예교수)께서 '의사가 되어 환자 한명 한명을 치료하는 것도 좋겠지만 기초의학자가 되어 좋은 신약을 개발해 한꺼번에 수십, 수백명의 병을 고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저를 기초의학의 길로 이끌었어요."

 

 

-기초의학 연구에 30여년을 보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분야인데 후회한 일은 없었나요.

 

"기초의학 연구는 끝을 알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이며 약해지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싸움의 끝에는 새로운 생명현상의 발견과 신약 개발이라는 기쁨과 환희가 있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겁니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짬이 없을 텐데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그림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생명·혈관현상을 관찰하고 그림도 그려요. 가끔 산책도 하고 노래도 좋아합니다."

 

 

-작년에 KAIST 최고의 명예직인 '특훈 교수(Dist inguished Professor)'로 임명되셨는데 어떤 혜택들이 주어집니까.

 

"특훈교수는 KAIST 전체 교수 중 8명 밖에 안돼요. 정년 뒤에도 70세까지 비전임직으로 일할 수 있고 월급을 조금 더 줍니다. 스카웃이 심하니까 붙잡아 두는 기능도 할 테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의학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 세대는 노벨 의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겠지만 제자들을 잘 교육하고 훈련시킨다면 실현될 수도 있겠지요. 제자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도록 하는 것이 저한테 주어진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가르쳐야지요."

 

 

-연구성과를 보면 전북대의 자랑이자 자랑스런 전북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부가 있다면.

 

"예방과 치료효과는 탁월하고 반면 부작용은 적은 새로운 암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인류에 공헌한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