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빠랑 도립미술관 가고 싶다던 딸(6살)을 데리고 모악산으로 향하는 길, 딸이 묻는다. "아빠, 미술관은 왜 이렇게 멀어?" 들뜬 마음에 빨리 가고 싶었나보다. "미술관이 집에서 가까우면 좋을 텐데, 미술관은 왜 멀리 있어?"라고 또 묻는다. "음…." 생각해보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가까우면 좋을 텐데…." 그냥 딸의 말을 되풀이한다. 딸과 함께 하는 즐거운 길이지만, 멀다고 느낀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꼽는 문화예술 향유의 첫 번째 걸림돌은 '시간없음'이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2010) 조사, 시간없음 40.1%, 비용부담 27.4%, 정보부족 10.9%).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불리는 직장인 생활, 딸·아들 손에 끌려 영화관·미술관에나 가야 예술을 즐길 수 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색소폰이라도 배우고 싶지만 문을 여는 곳이 없다. 영화라도 볼까하고 극장에 가면 대부분 짝끼리 오기 때문에 혼자는 쑥스럽다. 일본 가나자와시의 '시민예술촌'은 24시간 문을 연다는데 우리나라 공공문화시설은 밤 10시만 돼도 문을 닫는다.
개방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한 연구기관(2012)의 조사결과, 직장이나 집에서 문화시설(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국 평균 46.3분이었다. 거리와 방문횟수의 상관관계도 분석했는데, 문화시설까지 걸리는 시간이 1분 늘어날 때마다 문화시설을 찾는 횟수가 0.123회가 줄어들었다. 만약 도립미술관을 모악산 밑이 아니라 시내에 지었다면 지금처럼 주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찾는 공간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문화소외층인 어린이, 노인, 직장인, 빈곤층이 찾기에는 너무 멀다.
예전에는 문화시설 '수'가 중요했다. 그리고 크고 화려한 시설을 좋아했다. 그래서 땅값이 싼 외곽지역에 멋진 문화시설들이 들어섰다. 그런데 짓고 보니 활용도가 문제였다. 예술행사가 열리기보다 놀리는 날이 더 많았다. 밖으로 빠지다보니 접근성이 떨어져 찾는 발길도 적었다. 문화시설 수보다 '활용률'에 주목하면서 소규모 '생활밀착형' 문화시설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라북도가 '작은 도서관' 및 '작은 영화관'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정부는 2015년까지 체육시설 접근거리를 830m, 2025년에는 700m 이내로 줄여 '걸어서 10분 이내'에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문화시설의 접근성과 관련해 이러한 체계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문화복지를 강조하는 전라북도가 시급하게 추진해야할 정책이다. 특히 읍·면지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읍·면지역주민과 농·임·어업 종사자가 문화시설까지 걸리는 시간은 전국 평균보다 1.4배(65.78분), 1.8배(85.49분) 더 길기 때문이다. 농촌에 산다고 문화를 즐길 권리가 차별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