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친일에 가담하지 않은 석정의 존재 자체가 거북하기만 했을 것이고, 친일의 허물을 반공으로 감추며 행세하던 문인들은 그런 석정에게 식민지시대의 도피적 목가시인이라는 허울을 들씌워 희석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석정의 시집'슬픈목가'에 실린, 소위 현실도피적 목가시로 폄하되는 시들이 사실은 시대적 절망과 생활고 속에서 식민지 시대를 올곧게 살았던 떳떳한 기록이라는 것을 세상에 못박아두고 싶었을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해석이다. 석정은 해방공간에서 친일인사들이 설치던 시기에 자신의 식민지 시대의 시들만으로 '슬픈목가'를 엮어 친일 문인들이 활개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반면, 정 교수는 김동인의 식민지시대 소설'젊은 그들'에 대해 작가의 대표적 친일소설인 '백마강'보다 훨씬 농도 짙은 친일역사소설로 분석했다. 김동인 스스로 '젊은 그들'을 통속소설로 폄하한 진짜 이유가 부끄러운 친일소설을 가급적 읽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왜곡된 표현이 아니었을지 꼬집었다.
이같은 분석들은 정 교수가 낸 '세월이 보이는 길'평론집(신아출판사)에서 제기됐다. 정 교수는 신석정과 김동인 외에도, 이태준의 '해방전후'·김송의 '무기 없는 민족'·채만식의 '태평천하'·조운의 시조에 대한 다시보기를 통해 식민지 혹은 분단시대 글쓰기의 고통을 가늠하는 서사적 탐색을 했다.
2부에서는 저자의 주변 동료 시인들에 대한 시평과 함께 인간적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겼다. 이병훈 유고시집 '하루 또 하루', 강인한 시집 '어린 신에게', 장지홍 시집 '칠석날', 김석천 시집 '세상 뱃속에 있다가', 호병탁 시집 '칠산주막', 김익중 유고시집 '어느 벌판', 유대준 시집 '춤만 남았다' 등이 그의 이번 평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