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에 외국인을 지금처럼 흔히 볼 수 있었던 때가 언제였는가. 신라시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라는 남자는 아라비아에서 온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는 중동에서 온 아리비아 상인들의 무덤들이 있다고 한다. 그 이전 가야국에도 왕후가 인도에서 온 공주라는 설도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고려시대까지 다문화를 유지해왔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외국과의 무역이 단절되어 우리사회의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은 말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우리와 피부, 얼굴 생김새등이 다르다고 외국인들을 배척한 역사가 있었다. 국제정세 흐름을 제대로 파악못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일합방등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들을 겪게 되었다.
이제는 외국인과 같이 공존해야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외국인이 더 이상 낯설게 보여지지않는 외국인과의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다.
필자가 산부인과 복도를 걸어가는데 산모들의 이름 중 외국인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가 1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해마다 수천쌍의 다문화가정이 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눅눅치 않은 모습이다. 시골 농어촌학교에 가보면 전교생 중 상당수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왕따를 당 한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착찹한 심정이다. 과거 우리가 못 살 때 우리광부나 간호사가 외국에 나가 힘겹게 일 할 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에게 멸시를 당할 때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컸을 지를 생각해보자. 그런 아픔의 시련을 듣고서 우리는 기적을 이뤄냈다.
이제는 시골마을의 이장이나 동네 일을 맡아서 하는 외국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이 아니라면 우리농업농촌사회는 기반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농협에서는 수년전부터 다문화가정의 안정적인 정착이 이뤄지도록 지역본부단위의 교육 및 각 지역농협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친정인 고향에 다녀올 수있도록 항공권을 지원한 바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다문화가정에 전주시가 체육시설 이용료등의 감면 헤택을 준다고 한다. 환영하는 바이고 이를 계기로 다문화가정을 배려하는 시민의식과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여러 헤택이 전국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각 지자체는 조례를 개정해 다문화가정에 많은 지원을 해야한다.
또한 어느 지역에서는 외국인며느리 배구단이 결성돼 각 지역별 다문화가정과 친선경기를 펼친다는 소식이 있으며 이들은 영·호남 친선대회등 치르고 더아가 한. 일친선교류전등을 준비하고 있다고한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이 더 이상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접어야한다. 이들의 이익이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정치권 및 각 지자체에도 그들의 진출이 이뤄져야할 것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외국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사회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고 시민의식도 향상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나라이다. 2002 월드컵 4강으로 세상에 대한민국을 알린 지 올해로 10년째이다. 이제는 여러 가지 문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세계화에 이바지 할 때이다. 우리의 외국인 이웃들을 내 친지처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