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막둥이가 의욕을 잃었다. 5월말까지만 일하겠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는 보지만 내심 6월에 또 사람을 찾아야 하는 내 답답한 사정이 앞선다. 20대 청년의 그늘진 얼굴은 오늘따라 더 작게 보인다. 도대체 언제쯤 상대방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정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이제 내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첫째, 그녀들은 말이 곱다. 내가 늦잠이라도 자고 있는 날에는 들어서면서 "어제 손님들이 늦게까지 괴롭혔나보네. 어서 더 자"라고 말한다. 어쩌다 옷까지 차려입고 준비를 마친 아침이면 "아이고 부지런하기도 해라. 돈 많이 벌겠네!"라고 말한다. 매번 나의 약점을 알아서 먼저 막아주고, 듣고 싶은 말을 꼭 넘치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절도' 있게 내뱉는다.
둘째, 그녀들은 핑계가 없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주 3일 동안 우리 공간 실내, 실외의 크고 작은 관리를 책임지는 것이 그녀들의 임무다. 아침부터 하루 5시간을 꼬박 일하고 점심 한술 뜨고 커피한잔 타서 마시고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총총히 사라진다. 1분이라도 늦게 오거나,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못 끝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셋째, 그녀들에겐 일과 사람과 공간이 하나다. 말을 꺼낸 적이 없는데 어느새 보면 누구라도 밟고 넘어 질까봐 앞마당의 자갈을 쓸어 담고 있고, 또 휘어진 호미로 뒷마당을 갈고 있다. 다가가 말을 걸면 그때서야 "곡괭이가 하나 있으면 좋겠네!"하고 웃을 뿐이다. 또 올 때마다 시래기, 장아찌, 김부각 등 반찬을 해 오고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잡사봐. 어제 새로 했는데 맛은 없어" 게다가 호떡, 누룽지, 고구마 등등 간식거리도 싸온다. 그리고 또 똑같은 말을 한다. "여즉 아침을 안 먹었을 텐데 얼마나 배고파. 어서 잡사봐!"
내가 그녀들과 함께 일한지는 이제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12일 되었다. 문화판 근처에서 20여년을 일하면서 이토록 맘에 쏙 드는 '완벽한 동료'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들의 학력, 경력은 모른다. 그러나 그녀들의 나이는 안다. 내가 '큰엄마'라고 부르는 그녀는 올해로 78살, '작은 엄마'라고 부르는 그녀는 69살이다.
지난 2달간 10여명의 40·50대 아주머니들과 20·30대 젊은이 들을 만났지만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은 모두 거절당하고 더 이상 적임자 찾는 것을 포기할 즈음에 그녀들을 만났다. 10여명에게 거절당한 이유는 당연하다. 보수는 적고, 업무범위는 유동적이고, 고용조건은 안정적이지도 않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런데 이 모든 사정을 그녀들은 뛰어 넘었다. "남 돈 받기가 어디 쉽가니!"라는 말 한마디로. 그녀들의 관용과 배려에 감사하면서 날마다 부끄럽다. 더 많은 '그녀들'이 문화판에 '정당한 대가를 받는 동료'로 들어 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일로 보답을 하고 싶다.
이파리까지 하얗게 얼어버린 화초를 보며, 온갖 아르바이트에 지쳐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난 막둥이에게 "어제도 푹 못 잤구나?"라고 매번 똑같은 말밖에 못하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어서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때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그대로 조화로운 '그녀들'을 꼭 닮고 싶다. 아 그러나 아직은, 감히 '그녀들'을 따라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