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의 폭로를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나선 언론이었다. 매카시의 폭로를 헤드라인으로 다룬 신문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보수주의자들은 결집했다. 덕분에 매카시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지하는 세력이 불어났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1954년 6월 9일에 열린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매카시는 육군 법률 고문인 조셉 웰치로부터 치명적인 수모를 당한다. 그날도 매카시는 '육군 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며 웰치가 후원하는 젊은 변호사가 좌파성향의 조합에 몸담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웰치는 "한 무고한 젊은이를 그렇게 갈가리 찢을 정도로 잔인하고 무지한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며 "죄 없는 사람을 정치적으로 살해하려는 짓"을 하는 매카시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비판했다. 반박하려는 매카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휴회를 요청해 청문회장을 나가는 웰치의 뒤로 방청객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TV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이 청문회는 그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다.
매카시가 주도한 광풍의 시기는 짧았다. 그러나 매카시즘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국정치 현실에서는 그 생명력이 더 강하다. 언론학자 강준만교수는 '매카시즘은 공산주의 문제를 개인 또는 특정집단의 소아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4·11 총선을 코앞에 두고 '혹시' 했었던 매카시즘-색깔론이 '역시' 다시 등장했다. 그 생명력이 그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