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대 교수
남자화장실의 변기 안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남자들은 무의식중에 파리를 조준하게 되고 이를 위해 변기에 바짝 다가섬으로써 화장실바닥은 더욱 깨끗해진다. 그런데 가만보면 모든 변기 안에 한 마리씩 앉아있는 파리는 살아있는게 아니라 실제크기로 그려진 그림파리들이다. 이 아이디어는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키붐 (Kieboom)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는데, 그의 연구팀은 이 아이디어가 실행에 옮겨진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의 화장실에서 남자들의 조준율(?)이 80% 증가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화장실에서의 행태조차 경제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사람의 선택 또는 의사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인데, 사람의 의사결정이 경제논리에만 의거하지 않으며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고전적 합리성을 위반하는 경우라도 그 비합리성에 일단의 예측가능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학문이 바로 행태경제학이다. 그 선택의 규칙성이 선택의 대상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차적인 환경이나 자극에 의외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행태경제학은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람의 선택 또는 행동양식에 나름의 시스템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크고 작은 제반 요소들을 '넛지(nudge)'라고 부른다. 여러 넛지들에 기반한 다양한 선택의 규칙성에 대한 연구업적이 쌓이면서, 이제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넛지시스템의 디자인을 통해 사회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있다.
장기기증의 예를 들어보자. 장기기증의 결정은 깊은 심사숙고를 요구하는 문제이고 심정적으로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결정이기에 모든 나라는 단순히 '장기기증에 참여합시다'라는 식의 홍보차원을 넘어서는 적극적 대책마련에 고심인데, 실제로 해외 각국은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넛지를 실험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우리 주에서는 성인의 87%가 장기기증에 찬성하고 있다'는 문구를 곳곳에 홍보함으로써 장기기증인구의 급성장을 경험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쉽게 동조하지 않더라도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규범이 제시될 때에는 이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한다는 행태경제학의 연구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이 주정부는 여기에 추가로 자신이 장기기증자라는 사실이 페이스북 등의 네트워크매체에 자동으로 보여지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는데, 이는 어떤 바람직한 사회규범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남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는 선택환경을 넛지화함으로서 장기기증의 인센티브를 배가시키고자 하는 선택디자인의 한 기법이다.
한편 덴마크에서는, 운전면허 취득시 특별히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사후 장기기증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소위 '옵트아웃 (opt-out)제도'의 시행법안을 심의 중에 있다. 이 아이디어는 우리나라처럼 적극적으로 장기기증을 신청해야 기증승인이 나게 되는 '옵트인(opt-in)제도'에 비교되는 대안으로서, 사람들이 변화보다는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현상유지선호(status quo bias)'에 대한 행태경제학의 연구결과를 넛지차원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실제로 이 옵트아웃제도를 법으로 실행하고 있는 스페인이 인구비례당 세계 최고의 장기기증자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시장지배력을 악용하여 소비자 또는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수단 등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겠기에 여전히 경제학이 암울한 학문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의사결정주체의 합리성에 대한 성역을 넘나드는 행태경제학과 이를 사회공익의 실현에 적용하고 있는 넛지시스템은 흥미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