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은 머리를 울려 깨끗한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반면 판소리는 목을 파열시켜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을 좋은 소리로 친다.
흔히 목이 약간 쉰듯하고 탁한 허스키 보이스를 수리성이라 한다. 이것이 판소리의 이상적인 '소리 목'이다. 이와 대립되는 천구성(또는 청구성)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맑고 깨끗한 목을 말한다. 수련하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천구성은 무겁고 박진감 넘치는 판소리 대목을 소화하는데 다소 무리가 따른다.
나무로 치면 천구성은 버드나무나 오동나무처럼 반듯하게 자란 경우다. 이에 비해 수리성은 구부러지고 휘어진 소나무와 같다. 톱과 대패질로 잘 다듬기만 하면 나무결과 무늬가 아름답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톱과 대패질이 득음의 과정이다. 이러한 득음의 과정을 거쳐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
그런데 수리성이 지나쳐 이른바 '떡목'이면 곤란하다. 떡목은 듣기에 몹시 빡빡하고 탁한 소리다. 갑갑하고 변화가 없어 소리 목으로는 최악이다. 고음부의 음역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힘들다.
이 치명적인 목을 극복하고 5명창 반열에 오른 분이 익산시 망성면 출신 정정렬(1876~1938)이다.
7살 무렵에 정창업의 문하에 들어갔던 정정렬은 14세에 스승이 세상을 뜨자 이날치를 찾았다. 하지만 이날치 또한 16세에 죽고 말았다. 스승 복이 없음을 한탄한 정정렬은 입산수도해 홀로 수련을 쌓는 독공(篤工)에 들어갔다. 맨 먼저 들어간 곳이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 기슭에 있는 심곡사였다. 이곳에서 수년간 공부하다 충남 홍성의 무량사, 이어 공주 갑사로 옮겨 40세까지 내공을 쌓았다. 그야말로 25년 동안 소리에만 미쳐 지냈다.
이러한 내공이 사망하기 전 서울생활 10년 동안 불꽃처럼 피어났다. 판소리 대회를 휩쓸었고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어 판소리 중흥에 앞장섰다. 특히 창극운동을 주도해 '현대 창극의 아버지'로 불린다. 김연수 김소희 박녹주 김여란 이기권 박동진 등이 그의 제자다.
때 마침 그가 첫번째 독공에 들어갔던 심곡사에서 정정렬 명창의 득음 기념 공연장 개관을 기념해 제1회 떡목음악회가 열렸다. 비가 오는 가운데 열렸는데, 명창의 음악혼이 오랫동안 기려졌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