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대가 내 방에 머물 때
이 길 상
언젠가 그대가 내 방에 머물 때 책상 구석의 귤 껍데기 땡강땡강 말라가고 일요일 슬리퍼를 끌고 옥상에 올라가 아무도 읽지 않을 시집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고 싶다. 그렇게 서 있다 홀로 돌아오고 싶다.
언제가 그대가 내 방에 머물 때 작은 화분에 물을 주거나 거리를 걷다가 한 잎 두 잎 떨어져 그냥 묻히는 이파리들을 보며 벤치에 앉아 있고 싶다. 그럴 적마다 청바지 무릎을 이유 없이 문지르며 미소 짓는 나를 보고 싶다.
언젠가 그대가 내 방에 머물 때 내가 나를 들여다보듯 하늘을 쳐다보고 싶다. 기울어지는 하늘보다 더 잿빛일 내 안. 가슴이 무거워질수록 왜 살아 있다고 느껴질까. 언젠가 그대가 내 방에 머물 때…….
※이길상 시인은 200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