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귀갓길에 시내버스를 탔다가 운전기사에게 봉변을 당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술 한 잔 걸친 것이 탈이었나? 마침 기사 바로 뒷좌석이 비었기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집 사람과 몇 마디 나누는데 기사가 신경질을 부렸다. "술 냄새 나니까 뒤로 가요" '가세요'가 아니라 '가라'는 거다. 기분이 상했다. "아니 뒤로 가라니 빈 자라에 앉지도 못하나?" "술 냄새 풍기며 시끄럽게 하니까 그러죠"
맹세컨대 그 날 나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시끄럽게 하지도 않았다. 그럴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도 아니다. 화가 났다. "아니 승객에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나. 좀 친절할 수 없나?" "뒤로 가라는데 웬 말이 그렇게 많아요. 내 참 더러워서…" "더러워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 같으니…" 시비는 거기까지다. 20여분 걸려 집 근처 승강장에서 내릴 때 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가끔 TV에서 취객이 운전기사와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로 손찌검까지 하는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술 취했으면 조용히 갈 일이지 왜 저러나.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 날 그런 봉변을 당해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무조건 취객만 잘못 했을까? 그 지경에 이르도록 운전기사는 아무 잘못도 없었을까? 승객들에게 좀 더 친절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 날 내 봉변의 결론을 나는 이렇게 내렸다. 요즘 시내버스 파업사태로 그 기사는 승객들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술 마신 승객이 뒷자리에 앉아 흥얼(?)거린다. 듣기가 싫다. 홧김에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되레 혼을 낸다. 에라, 잘 걸렸다. 화풀이 한 번 하자. 아 가엾은 소시민은 술 한 잔 마시고 버스에 탄 죄로 '서민의 발'로부터 돌려차기 한 방을 맞은 것이다.
작년 초에 이어 올 해 또다시 전주 시내버스 파업이 한 달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업주 측이나 노조 측 모두 한 치의 양보 없이 끝장을 볼 태세다. 민노총 주도의 이번 파업은 80% 이상의 노조원이 업무에 복구해 시민들의 불편은 크게 완화됐다. 문제는 집단사고에 젖은 일부 극력 노조원들의 도를 넘은 물리적 행동이다. 공무 수행중인 시청 공무원을 폭행하는가 하면 시장이 참석한 행사를 방해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열린 김완주 지사의 딸 결혼식장에서 소란을 펴기도 했었다. 이게 뭔가. 이래 놓고 무슨 염치로 시민들의 성원을 호소할 수 있나. 급기야 지난 23일에는 전주시청 현관에서 용감하게도(?) X까지 싼 노조원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시민들이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고 부도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노조가 시민들의 동정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해야 한다. 이제라도 시민들에게 백배사죄하라. 그리고 증오의 물살을 낮춰라. 당신들의 호응이 없으니 우리도 극단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과격한 논리는 자가당착이다. 그럴수록 시민들의 동조는커녕 등을 돌릴 것이다. 내 경우처럼 어느 날 시내버스에서 졸지에 봉변당하는 승객들은 미움의 감정을 노조 측에 쏟아 낼 수밖에 없다. 사업자 측? 어쩌면 이 사태의 진짜 책임은 고개를 빳빳이 세운 그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점잖게 뒤돌아 앉아 양비론(兩非論)이나 들먹이는 전주 시민들, 정말 양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