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영화, 자체 한계로 붕괴" 예술영화의 반복된 공격에 의한 것은 아니다

'게스트 큐레이터' 크리스 후지와라 강연 요약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신설한 '게스트 큐레이터'는 영화평론가 혹은 감독이 직접 주제를 정한 뒤 영화를 선정하고,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JIFF, 줌 인'에서는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이자 에딘버러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 후지와라가 초청됐다. '파열 : 고전영화의 붕괴'를 주제로 한 그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파열 : 고전영화의 붕괴'는 영화가 성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영화는 영화제작 방식에 관한 측면과 관객의 특성 및 취향에 얽힌 측면에 입각해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영화가 주요 예술 매체 혹은 사회 관습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대개 1930년대에 영향력이 가장 많고 안정적이었다. 영화의 안정성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붕괴하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 ~ 1970년대에 그 영향력이 두드러졌다. 이 시기에는 '고전', '주류', '일반', '상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에 대해 정면으로 맞선 예술 영화가 등장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영화를 만들던 모든 주요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파열 : 고전영화의 붕괴'를 통해 예술 영화의 반복된 공격에 의해서라기보다 고전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으로 인한 붕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1960년에 첫 영화를 연출했던 안토니오 마르게리티 감독은 고전영화가 무너지던 시기에 등장했던 영화제작자들의 전형을 잘 보여 준다. 그는 서사적인 측면보다는 표현의 강도, 감정, 분위기에 의존하는 새로운 방식을 사용했다.

 

안토니오 마르게리티 감독의 명작 〈캐슬 오브 블러드〉(1962)는 배우의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 한 장면에서 사용된 여러 대의 카메라, 무작위적인 시점 등 초창기의 TV에서 사용되던 기법이 두루 사용됐다. 핸드 헬드 카메라로 촬영된 한 장면에서는 별안간 어느 여인이 침실에서 공격을 받고 살해당한다. 여기서 카메라가 정지돼 있다는 점이 불안한 요소다. 또한, 줌 렌즈를 사용함으로써 거추장스러운 초자연적 대상이 강조되기도 했다. 안토니오 마르게리티 감독의 영화에는 이러한 장비 사용으로 인해 불안정한 세계가 만들어졌다.

 

클로드 샤브롤은 뛰어난 감독이지만 서스펜스 스릴러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영화를 고수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누벨바그 시대의 다른 감독들에 비해 저평가됐다. 그가 만든 〈파멸〉(1970)의 여자 주인공 헬렌(스테파니 오드랑)이 변호사(미셸 뒤쇼수아)와 함께 교통수단의 하나인 트램을 타고 여행하는 장면은 해당 영화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서사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온갖 시련을 겪던 헬렌이 안정을 찾고 영화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감독은 마치 그녀에게 '그동안 삶에 얽매여 있었으니 이제는 인생을 즐겨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마치 그녀가 자유를 찾는 이 한 부분을 위해 영화 전체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강조 돼 있어서 영화의 구성이 흐트러진다. 여기서 트램은 영화와 친밀감을 형성한다. 초창기에는 인류가 시공간을 지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기술을 찬양하는 영화들이 종종 만들어졌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들 가운데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낯선 곳에서의 2주〉(1962)에서도 잭 앤드러스(커크 더글러스)가 타고 가는 차가 유독 눈에 띈다.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정신적 상태 변화가 잘 드러난다. 클로드 샤브롤이 사용한 트램은 창이 크고 탁 트여서 주인공을 외부와 소통시킨 반면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에는 외부와 단절된 자동차가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정신세계는 현실로 돌아오려는 순간에 현실과 가장 큰 거리감이 조성된다.

 

'파열 : 고전영화의 붕괴'에 나오는 또 다른 교통수단을 언급하자면, 바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활약한 구 소련의 미하일 롬(Mikhail Romm)이 만든 〈1년의 9일〉(1962)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열차를 들 수 있다. 이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미하일 롬은 이런 카메라 사용을 통해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 여건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1년의 9일〉은 인간의 기억, 관계, 탄생에 대한 영화다. 영화에서는 마치 인간이 탄생하는 순간이 공허하며 인간은 처음부터 버림 받은 존재인 것처럼 표현된다. 영화 후반부에 방사능 노출로 인해 서서히 죽어 가는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미하일 롬은 그 장면에 이어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열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이 장면은 가까이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 표현하며 현실의 내면이, 혹은 관객과 영화 속 세계 사이가 파열되고 분해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장소에 여자가 있으니〉

 

5/3 오전 11시 J5

 

〈1년의 9일〉

 

5/3 오후 8시30분 C3(GV)

 

〈사고뭉치 간호조무사〉

 

5/2 오후 5시30분 C3(GV)

 

〈선택〉

 

5/3 오후 2시30분 M7

 

〈파티〉

 

5/4 오전 11시30분 M7

 

〈프랑켄슈타인과 지옥에서 온 괴물〉

 

5/3 오후 5시 J5

 

〈캐슬 오브 블러드〉

 

5/2 오후 8시 M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