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그 만남이 한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도 있고, 추하게 변질시킬 수도 있다. 인간의 만남 중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매우 특별하다.
최근 읽은 책 중에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가 쓴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이 있다. 1801년 11월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 정약용이 주막 봉놋방에서 서당을 열었을 때, 15살 더벅머리 소년 황상이 그곳을 찾아왔다. 그는 아전의 아들이었다.
이 때 다산을 처음 만난 황상은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들은 다산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한다. "내 생각을 말해줄까? ……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는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지?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강진 유배생활 18년 동안 다산이 키운 제자들은 매우 많았다. 그러나 다산이 진정으로 아낀 제자는 황상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황상은 주옥같은 시문들을 지어냈다. 급기야 제주 귀양살이에서 우연히 황상의 시를 접한 추사 김정희는 황상의 시를 평하여 "두보의 시를 골수로 삼고, 한유를 근골로 삼아 튼실하고 웅숭깊은 시"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아전의 자식으로서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며 인생을 보냈을 황상에게, 스승과의 만남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화제를 바꾸어 본다. 지난 5월 10일 제주도에서 원광여중 2학년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20톤 덤프트럭에 받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가해차량은 벽돌을 가득 싣고 있었던 터라 총중량은 약 24톤으로 추정되었다. 이 사고로 인솔교사 두 분 중 신명선 선생님이 사망하였고, 다른 한 분은 중상을 입었다. 학생들 34명 중 4명은 중상이었고, 나머지 30명은 경상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학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전띠를 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분의 인솔교사는 학생들 한 명 한 명 안전띠를 맸는지 확인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솔교사들의 높은 안전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명선 선생님은 학생을 돌보려고 안전띠를 잠시 풀어놓은 상태에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만약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자신만 챙겼더라면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고 이튿날 원광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문상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이제 서른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그 분은 이 세상을 떠났다. 교사로서의 삶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홀연히 떠난 스승을 생각하며 제자들은 울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의 배움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지식의 섭취, 지혜의 발견은 물론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도 배움의 과정에서 터득하게 된다. 신명선 선생님은 제자들의 가슴에 스승의 고귀한 흔적을 새기고 이 땅을 떠났다. 그 분의 편안한 휴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