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위주의 교육이 우리 교육 현장을 망가뜨렸다. 성적지상주의가 불러온 폐단이다.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학원서 공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지·덕·체의 조화로운 교육을 위해 교사들이 무던히 애썼다. 집에서 소홀한 인성교육까지도 바르게 잡아줬다. 어릴적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아나 청소년 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말한다.
아직도 학교에서 인성 교육 보다는 점수 위주의 교육이 보편화돼서 부작용이 속출한다. 농업사회가 근간을 이뤘던 60·70년대만해도 교사와 학생들이 정을 주고 받는 교육을 많이 했다. 한마디로 스킨십이 이뤄졌다. 학교와 가정도 쌍방향으로 소통이 잘 이뤄졌다. 아이들을 맡기는 학부형 입장에서는 학교와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 만큼 신뢰관계가 두텁게 형성돼 교육효과도 컸다.
인성 교육을 우선시한 학교 교육이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안정시켰고 교사들을 바라다 보는 가치관이 긍정적으로 형성됐다. 사제간의 정을 오랫동안 나누는 정겨운 모습들이 학교 안팎에서 펼쳐졌다. 제자들은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가, 스승은 제자를 사랑으로 감싸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피어났다. 결국 이 같은 모습은 국가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교사들 사이에 학생들은 넘쳐 나지만 진정한 제자들이 없다고 말한다. 학생이나 학부형 입장에서는 교사들은 넘쳐 나는데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 처럼 우리 교육 현장이 불신으로 가득차고 척박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우리 교육 현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특히 입시위주의 성적지상주의가 사제 관계마저도 불신의 골로 밀쳐 넣고 말았다.
지금은 교육 수요자나 공급자 양쪽이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 처럼 사랑과 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교사들이 그리워졌다. 샐러리맨으로 교사들이 전락해버려 자기 존재감마저 갈수록 약해졌다. 그 만큼 우리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산 들 바다 등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사랑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교육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출퇴근 시간에 쫓겨 정성으로 학생들을 돌보지 못하는 교사들이 오늘 스승의 날을 맞고서도 뒷모습이 처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