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주기자 bjahn@
제 31회 스승의 날을 맞아 제9대 전북도 교육감을 역임한 홍태표 전 교육감(85)을 찾았다. 일선 교사에서 교육청 장학사로 전격 발탁된 이후 '문제은행제'와 고3 모의고사제를 처음 도입하고 학생체육발전계획을 수립, 학력신장과 체력향상에 탁월한 성과를 올리면서 '교육청 브레인'으로 통했던 홍 전 교육감. 윗사람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선 직언과 막말도 서슴지 않았던 강단과 기개가 지금도 교육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임명직 교육감을 맡으면서 민주화 열망을 타고 일어난 전교조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팔십 중반의 나이임에도 교육자로서 기품을 잃지 않은 채 아직도 오래 전 일과 이름 연도 수치 등을 정확히 인용하는 기억력이 놀라웠다. 홍 전 교육감을 전주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교육계 현안과 교육자로서 걸어 온 길, 후진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를 들어보았다.
-연세에 비해 강건해 보이십니다.
△"지난해 폐렴으로 한동안 고생 좀 하다가 한 달 전부터 바깥출입을 했어요. 지난주에는 모처럼 지인들과 운동을 했는데 무리를 했는지 몸이 뻐근합니다. 평소 아침마다 30~40분 정도 걷기운동을 해요. 전주천변에서…"
-오늘이 31회째 맞는 스승의 날인데 감회가 남다르실텐데요.
△"뒤돌아보면 보람된 일도 많았고 한편으론 아쉬움도 커요. 엊그제 신문 칼럼에서 (학교에)'선생은 없고 교사만 있다.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라는 글을 읽었어요. 오늘날 교육현실에 대해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많이 들어요. 왜 이렇게 됐는지. 앞서 교육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책임도 통감합니다."
-스승의 날에 찾아주는 제자들이 있는지요.
△"일선 교사를 얼마 안해서…. 그래도 몇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할머니들인데 서울에서 찾아옵니다. 반갑고 고맙죠."
-스승의 날 의미가 큰데 요즘은 교사나 학부모 모두 부담스러운 날이 돼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예전엔 아이들이 십시일반으로 꽃이나 간단한 선물을 했었어요. 사제간에 아름다운 모습이었죠. 그런데 점점 커지다보니, 일부에선 무리한 요구도 있었던 것 같고, 또 이런 것 때문에 아이들 차별하는 문제도 생기고 해서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졌습니다. 선생은 선생으로서 대접받을만한 일을 해야만합니다."
-일부 교사들 문제도 있지만 '내 아이만은 특별하게'라는 일부 극성스런 학부모들도 문제잖아요.
△"아주 오래전 얘기죠. 전주 중앙초등학교에 검사장 아들이 다녔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는 거예요. 하루는 아이 아버지가 선생님을 집으로 저녁 초대를 하고 아주 깍듯이 선생님을 모셨어요. 그 다음날부터 선생님을 대하는 아이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질 때 학교 교육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들 위상도 높아지게 되고요."
-일선 학교에서 10년 정도 계시다 도교육청 장학사로 전격 발탁되셨다죠.
△"1966년 8월말인데, 태인 왕신여중고에 있을때 교육청에서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어요. 마침 비 온 뒤라 신발에 온통 흙이 묻었길래 길거리 구두방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신문을 뒤척이는데 교육청 인사가 게재됐어요. 자세히 보니 거기에 내 이름도 있는 겁니다. 그때서야 장학사로 발령 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장학사로 계실 때 교육감에 대한 항명 사건이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던데요.
△"당시에는 주산·부기 자격 검정시험이 서울에서 치러졌어요. 그런데 군산상고 아이들이 서울로 시험보러 올라가면서 장항에서 무임승차를 했다가 서울역에서 딱 걸린 겁니다. 이것이 군산신문에 대서특필되어서 제가 조사를 나가게 됐죠. 교장과 주임교사 인솔교사의 사표를 받았지만 훈계조치하고 복명서를 작성해서 교육감에게 결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교육감께서 복명서를 읽어 보지도 않고 내 얼굴에 냅다 내던지는 거예요. 그 때만 해도 젊고 혈기가 왕성할 때라 저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면서 교육감에게 '읽어보기나 해라'고 큰 소리를 쳤죠. 당시 부속실에 비서들과 기자들이 있었지만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기만 했답니다. 나중에 과장과 계장이 올라와 말리면서 소동은 진정됐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교육감께서 더 신임하게 됐다지요.
△"잠시 뒤 교육감께서 부르더니 햇병아리 장학사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내가 되레 몸둘 바를 몰랐죠. 바로 잘못했다고 사죄했죠. 그 사건 이후 저를 믿고 많은 일을 맡겨주셨죠."
-당시 교육청 브레인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교육정책 추진에 큰 성과를 올리셨다는데….
△"1969년 대학 예비고사가 처음 실시됐는데 성적이 전국 12개 시·도 가운데 10위로 최하위권이었어요. 소년체전 역시 10위를 했고요. 당시 신문사설에 '공부 못하면 공이라도 잘 차야지…'라고 실렸습니다. 그래서 학력신장과 체육진흥을 기치로 내걸고 고3학생에 대한 연 4회 모의고사 실시와 체력향상에 예산 지원을 집중했죠. 또 우수교사들로 출제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문제은행제를 도입했죠. 그 같은 노력으로 다음해 전국 학력평가에서 4위로 껑충 뛰어올랐죠. 소년체전은 전국 2위를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처음 도입했던 문제은행제도는 중앙교육원에서도 채택하게 됐죠."
-그 당시 고3 모의고사제를 거부했다가 낭패를 당한 학교장도 있었다지요.
△"1975년 광역시에 고교평준화제도가 도입되면서 광주지역 우수학생 2개반 정도가 전주고로 진학했습니다. 그러자 학교장이 이들을 '옥동자'라고 치켜세우며 200명은 서울대에 합격시킨다고 호언장담했죠. 그러면서 100등까지는 알아서 공부하라고 방임하고 101등~ 200등 까지만 보충수업을 실시했습니다. 또 교육청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를 계속 거부하는 거예요. 결국 그 아이들 대학입시 결과 서울대에 겨우 19명 합격했죠. 학교장도 문책당해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재임시절 '참 스승상'을 많이 강조하셨다는데….
△"함석헌 선생이 참 스승상을 3가지로 정의했는데 제가 큰 공감을 받았습니다. 첫째 실력있는 사람, 둘째 본을 보이는 사람, 셋째 감화를 주는 사람이에요. 선생은 부단한 자기 연수와 노력을 통해 어느 한 분야에 대해 자신있게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교과 수업만 잘한다 해서 되는게 아니고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발굴해서 키워주어야 합니다. 또 선생님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도 학생들에게 본이 되어야합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하고 수범을 보여야합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감화를 주어야합니다. 선생이 변해야 아이들도 변합니다. 가르치는 것만으로 책무를 다했다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참 스승으로서 할 일입니다."
-요즘 도교육청의 학생인권 조례 추진과 교육과학부의 교육벌(두발 복장 소지품 검사 교내집회 금지 등을 학칙으로 정해 시행여부를 결정하도록 함)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91년 교육자치제도가 부활됐는데 교육자치의 근간은 학교자치입니다. 유럽의 경우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장 교사를 모집 선발합니다. 교육행정기관은 뒷바라지 역할만하죠. 1995년 문교법전이 교육법전으로 바뀔 때 학교자치권을 인정해줬어요. 학교가 학칙에 따라 운영되도록 학교에 맡겨주는 것이 교육자치의 기본입니다. 이를 위해선 교과부의 권한을 교육청에 대폭 위임해주고 교육청은 학교가 잘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뒷받침해야합니다. 또한 학운위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앞으로는 학교자치가 교원임용권도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저출산 이농현상으로 농촌이 붕괴되면서 농촌 교육현장도 어려움에 직면해있는데요.
△"제가 교육감 재직때부터 농촌지역 1면 1학교를 추진했어요. 1개로 통폐합하는 대신 예산과 교사 정원은 다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집중 투자를 통한 교육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었어요. 결국 교장 교감 자리가 없어지다보니 반대가 심해 제대로 하지 못했죠. 핵심은 농촌학교를 살리려면 교사가 그 지역에서 함께 생활해야합니다.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좋은 시설을 해줘도 사람이 없으면 뭐 합니까. 교사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하면 어떻게 지도하고 가르칠 것인지 자연히 알게돼죠."
-학교폭력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요.
△"모든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지면 학교폭력과 왕따문제 해결이 가능합니다. 학교에 경찰을 불러들이는 것은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외면하거나 방치하겠다는 것 밖에 안됩니다. 누구는 잘못한 것에 대해 훈계하고 누구는 이를 외면하고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교육문제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선생님들의 책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선생님들의 훈계에 대한 학부모와의 약속과 인정이 요구됩니다."
-무너지는 교권 문제도 심각한 상황인데요.
△"엊그제 부산에서 여교사가 여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을 훈계하려면 현장에서 해야합니다. 교무실로 데려가 다수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하면 안됩니다. 학생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면 교육효과를 거둘수 없기 때문이죠."
-재임시절 청렴 강직하시다는 평가를 받았으셨는데 지난해 교육청렴도 조사결과 도교육청이 인사행정 분야에선 만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선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14위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개선될까요.
△"예전에 인사를 하면 답례를 하는게 관행이었던 때가 있어요. 그런데 내가 돈봉투를 안 받으니까 주위에서 '얼마나 배포가 크냐'라는 비아냥이 들려요. 그래서 원칙을 세웠죠. 비서실 직원하고 간단한 점심만 먹겠다고. 비리문제는 법만 가지고 안됩니다. 교육감의 의지가 일선에 까지 파급되도록 해야합니다."
-전임 교육감이 비위 혐의와 관련해 도피중인데 교육자로서 모양세가 좋지 안습니다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면 이해도 돼요. 교육감을 직선제로 하니까 당선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잖아요. 그러다보니 막대한 선거자금이 들어가게 되고…. 교육감 선거를 돈 안드는 방법으로 개선해야 됩니다."
-재임중 전교조 교사 대량 해직문제로 고충이 컸었을텐데요.
△"마음 고생이 실로 컸습니다. 그만한 관심과 노력을 부모에게 했다면 큰 효자소리 들었을 거예요. 임기중 절반을 전교조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여러 가지 구상했던 교육 개혁안은 재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저도 이리여중 교사로 있을 때 노조격인 교사협의회 지부장을 했어요. 그런데 철도국 파업때마다 교사들을 동원하는 거예요. 선생이 가르치는 것은 뒷전이니 나중에 안되겠다 싶어서 그만두었죠. 노조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합니다. 법을 벗어나선 안됩니다. 당시에도 합법화되면 얼마든지 하라고 설득했었죠."
-전북사람들은 인물을 키우는데 인색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은데요.
△"저도 공감하며 반성합니다. 1980년대 말에 광주교육감이 지역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5·18성지로서 인재양성 밖에 없다'며 동의를 구하고 교육예산을 학교에 전폭 지원하면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사법 행정고시 합격자를 다수 배출했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또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깎아내리지 말고 북돋아 주고 격려하고 도와야 전북에 큰 인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후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참 스승이 되어야합니다. 즉 선생다운 선생이 되어야합니다. 그럴 때 교권도 확립되고 교원의 지위도 향상되는 겁니다. 선생으로서 기본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