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감동이다

이기선 전주고 교사

 

진정한 배움이란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순간 내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척 중요한 지침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학문은 묻고 배움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공자와 같은 성인들의 가르침이 모두 대화체로 되어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제자들의 품성에 따라 어짊(仁)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 것도 성적이나 스펙이 아닌 주고받음의 과정속에서 스스로 깨치는 학문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30여년을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를 지탱해온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정은 사라지고 절망만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다. 나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잔소리하고 야단을 쳐가면서 잠을 깨우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이해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지만 이런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며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공부시간에 잠을 자는가. 도대체 아이들은 집에서 무엇을 하고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잠을 자며,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해야 할 만큼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하면 공부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을 우리는 망각하지는 않았는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느 학생이 입학을 위한 면접시험에서 "학생은 무엇 때문에 이 학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학교가 좋고 공부하고 싶어서 입학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시험관이 말했다. "만약 학생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면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네. 이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네." 그 말에 학생은 시험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학교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까?" 시험관이 대답했다. "학교라고 하는 곳은 위대한 사람 앞에 앉아서 그들의 살아있는 본보기를 배우는 곳이고, 학생들은 위대한 랍비와 교사를 지켜보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라네."

 

이것은 요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학생과 학부모님은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선생님은 권위의식에 빠져있거나 학생과 학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는 경우는 없는가. 선생님이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면 학생은 선생님을 좋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존경은 사라질 것이며 좋은 친구 같은 선생님은 늘어날 수 있지만 존경 받는 진정한 스승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지금 교단에 서있는 선생님들은 동료들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 되어가고 있으며 오로지 소위 명문대학에 합격시키고 대학진학 성적을 교육목표로 삼아 학생들을 내몰고 있을 뿐이다. 또 대다수 일반계 고교와 심지어는 전문계 고교에서 조차도 학창시절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에서 학사보고 1순위가 대학진학 성적의 결과다. 교육의 결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사고를 형성하게 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아무리 성적지상주의가 현실적인 문제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올바른 인성을 갖게 하는 것은 개인적 측면에서나 사회적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