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이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 따르면 순창에 13개 고추장 공장이 있는데 연간 매출이 3000억원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은 375명, 한 사람이 8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제조업 평균 4억5000만원 보다 배 가까이 높다. 반면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순창지역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 72곳의 매출은 모두 합해서 400억원 정도. 일하는 사람은 300명 정도다. 한 농가당 평균 매출액은 5억5500만원으로, 고추장 공장의 한사람 매출에도 못 미친다. 순창고추장이 식품 대기업에 의해 잠식당하면서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들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순창고추장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생산농가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이원재 소장은 이를 빗대어 "순창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의 생산성은 대기업 공장의 6분의 1 수준도 안된다. 고용 인원은 많지만 생산성은 뒤떨어지니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기업 고추장 공장들이 순창지역에 들어서면서 지역 농산물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늬만 순창고추장일 뿐 순창에서 생산되는 고추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값싼 중국산이 순창고추장으로 포장되고 있는 사실을 다수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농진청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부지런히 일해서 농사를 지으면 돈은 식품회사가 다 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식품회사들은 대형 회사들로,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문했다.
어렵게 전통을 지켜 온 순창고추장의 명성을 이용해서 손쉽게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대기업들이 지역과 농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관료들도 기업유치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기업의 탐욕과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표본이 순창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