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계절

이양선

 

공원에서 잡힌 방아깨비가 몸살 나겠다. 동네 꼬마 둘이 마주앉아 한시도 그냥 두지 않는다. 앞뒤 다리를 일직선으로 잡아 당겼다가 벌리기도 하고, 뒷다리를 붙들고 마주보며 방아를 찧게도 한다. 악동들의 손에 잡힌 초록의 방아깨비 날개 위로 유년의 뜰이 도미노가 되어 번져간다.

 

어머니 걸음 좇아 방죽골 밭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의 약수터는 나의 쉼터였다. 한 모금의 옥수가 땀을 식혀 주던 곳이다. 그 옆으로 누워있는 다랑이 논들의 물꼬마다 벌여 놓은 백중음식에 개구리들은 잔칫날을 맞았다.

 

뾰족뾰족 고개를 내미는 나락 모가지에 농심이 여무는 날, 어머니를 따라 방죽골 밭에 갔다. 아담한 방죽 가장 자리를 빙 둘러 보랏빛 붓꽃들이 청초했다. 방죽물이 무서워 한 송이도 꺾지 못한 나는 애매한 옥수수만 줄기차게 꺾었다. 그러다 무심코 돌아본 우리 동네가 엄지손톱만 했다. 산꼭대기에 걸려있는 낮달이 한낮의 더위에 졸고 있는 사이, 바지런한 어머니는 삽시간에 옥수수를 광주리에 채웠다. 머리 위의 옥수수가 광주리 밖으로 미끄러질 듯 간들간들 거리는데도 어머니는 두 손을 놓은 채 태연히 걸었다. 나는 어머니의 쪽머리를 놓칠세라 종종거리지만 얼마가지 못해 숨이 찼다.

 

노을이 멀어지는 등 뒤로 따라온 하루살이를 쫓다보니 어느새 동네에서는 저녁연기가 한창이다. 귀로의 고달픈 등을 어루만지는 바람과 함께 고삐 풀린 황소도 어슬렁어슬렁 집을 찾아 들었다.

 

풀벌레가 수런대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마른 쑥으로 모깃불을 지폈다. 마당을 맴도는 매캐한 연기에 나는 그예 눈물을 흘렸다. 긴 꼬리를 물고 오르는 연기를 무심코 따라가다 문득 멈춘 초가지붕에 박꽃이 앞을 다투어 피고 있었다. 밤의 정적 때문이었을까. 달밤에 피어서 더욱 빛이 하얀 박꽃이 신비스런 감성으로 젖어왔다.

 

멍석에 누운 우리들이 은하수의 전설로 빠져들 때쯤 어머니는 김이 오르는 옥수수 소쿠리를 들고 나왔다. '노랑, 하양, 보라, 어쩜 이리도 결이 가지런할까?'어머니의 잇속처럼 총총히 여문 옥수수를 뜯는 사이, 길을 잘못 든 반딧불이가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깜빡이는 반딧불 너머로 때마침 별똥별이 떨어졌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야무진 소원을 빌었다. 우리들의 머리엔 어느새 밤이슬이 촉촉했다.

 

여우비가 지나간 들머리에 무지개가 선연하던 말거리재, 그 너머 파랑새를 쫓던 꿈이 마냥 머무르던 곳.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푸나무 짐 위에 꽂혀있던 앵두만큼 새콤달콤했던 시절이었다. 가재를 잡던 동무들도 어느 도시의 중년이 되어 박꽃 피던 시절을 그리워하겠지. 산들바람 사이로 언뜻언뜻 떠오르는 상고머리는 이제 희어지기가 바쁘겠다.

 

문득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내 가슴에는 아직도 그 시절 어머니의 곱던 모습이 생생하다. 인생사 잠깐이니 두루두루 빈 마음으로 살라고 하시던 말씀 또한 또렷하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질겨지는 욕망의 끈에 매달려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그 시절 어머니의 나이쯤 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 나이를 지나친 지금도 노상 복닥거리고 산다.

 

바래지고, 세어지고, 무디어져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연둣빛 싱그럽던 시절, 밤하늘의 별만큼 꿈이 많던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눈앞에 선다.

 

공원에서 방아깨비를 못살게 굴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 수필가 이양선씨는 2010년 〈수필과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고 2011년 〈계간수필〉로도 추천을 완료했다. 2008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