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태풍이 온 시가지를 뒤흔들었다. 추석을 비켜가는 사이에 밀렸던 잔무를 대강 마치고 나는 역전 근처 은행을 찾았다. 예상대로 추석연휴 끝의 은행은 사뭇 붐비었다. 다소 지루한 기다림 속에 나는 문득 '다 먹어도 나이는 먹지 말라'던 친정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떠올렸다.
일을 보는 동안에도 가을을 재촉하는지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은행 문을 바삐 빠져 나오려는 순간, 웬 할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역'을 물었다. 금방 나온 집을 모르겠단다. 나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집 근처 슈퍼를 들렀는데 '얼마 전에 이사 든 골목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도 없고 동(洞) 이름도 몰랐다. 나는 암담했다.
나는 무작정 할머니의 길을 더듬어 볼 작정이었다. 두 사람을 가리기에는 턱없이 작은 우산 속에서 노인과 나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였다. 아무리 헤매어도 노인의 기억은 내 손을 덥석 잡던 은행 앞만 맴돌았다. 여전히 비는 지분거리고 어둠까지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맨발이 나의 한기를 재촉했다. 길가 슈퍼에 들러 새 양말을 신겼다. 거스름 대신 두 켤레는 가슴에 안겨주었다. 노인은 '고맙다'며 두 손을 모았다. 치마폭에서 성냥갑이 부스스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요즘 세상에 웬 성냥일까?'
나는 할머니를 분식집에 앉혔다. 칼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자초지종 끝에 큰아들이 개인택시 기사라는 것을 알았다.
"왜 혼자 사세요."
"-----"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노인은 '다 먹어도 나이를 먹지 말라'고 혼자 중얼 거렸다. 친정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자주 했었다. 오랜 당뇨병이 지겹지도 않는지 '네 아버지 건강이 전 같지 않다'며 눈물짓던 어머니다.
휴대전화와 씨름한 끝에 택시회사와 연결이 되었다. 국수물이 끓을 무렵 젊은 아들 내외가 분식집으로 들어섰다. 할머니의 집은 슈퍼 바로 뒤쪽 두 번째 작은 골목이었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앞장서서 내 손을 이끈다. 돌아서는 나를 애원하듯 놓아주지 않았다. 들어선 집은 부엌도 없는 남의 집 문간 단칸방이었다. 눅눅한 습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구석에 쌓아둔 누더기 홑이불자락 곁에 낡고 덕지덕지 때가 낀 휴대용 가스렌지가 놓여있었다. 찻물을 끓이려는지 렌지에 성냥을 그어댔다. 눅눅한 성냥은 이미 성냥이 아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그만 화가 치밀었다. 할머니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아들과 함께 살지 웬 궁상이세요."
할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장승처럼 서 있던 며느리가 끼어들었다.
"방이 모자라서 따로 살 수 밖에 없어요."
나는 며느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 자식 방은 있겠지' 나는 속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문득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스라이터도 켤 줄 모르는 여든 하고도 두 살의 할머니에게 며느리가 넷이고 사위가 둘인들 무슨 소용일까. 할머니는 '오늘의 이 고마움을 나머지 자식들에게 말해 두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다시 찾아오겠다.'는 못 지킬 약속을 나도 모르게 남긴 채 어두워진 골목을 빠져 나왔다.
상가의 불빛에 비친 빗줄기가 제법 번들거린다. 비속을 천천히 걸었다. 딸 뿐인 친정부모와 맏며느리의 무게가 내 어깨에 겹친다. 다 먹어도 먹지 말아야할 나이가 내게도 찾아오기는 올 것이다. 나는 빗발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맑게 갠 아침 해를 빨리 맞고 싶었다.
※ 수필가 신경자씨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 문광부의 문학작가파견사업 마동시립도서관 강사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