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이 울었지. 내가 80이 넘었는디, 한 20년 전까지는 울었제. 근디 지금은 울지 않아. 20년 전에 하구둑이 쌓이면서 물길이 변했어. 그 뒤로는 강이 울지 않아."
익산시 웅포면에서 '금강이 운다'는 전설(?)이 전한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금강을 끼고 있는 익산시 웅포면·성당면 부근 마을에 가면 들을 수 있다. 어떤 강 울음 소리일까 궁금해진다. 바람 소리와는 분명 다르다고 증언하는 지역 주민들, 살아있는 강이 운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강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밤이면 강이 우~하고 우는 거야. 바람 소리하고는 달라. 어릴 적 우리 할머니가 마을에 변이 생기거나, 기이한 일이 있기 전에 강이 우는 소리가 났다는 거야.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들었당게. 근데 지금은 강이 안 울어. 하구둑이 막히고 나서 물길이 변하면서 이젠 강이 더 이상 울지 않아 하구둑으로 물길이 변했어. 수위가 겁나게 올라가서 작은 섬들도 다 없어지고, 예전엔 섬에 들어가 농사도 짓고 그랬는디."
사람들이 강바닥을 파헤치고 강줄기를 틀어 막고 인공댐을 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 뒤부터 금강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 금강의 물줄기
금강은 한반도의 강으로 소백산맥에서 발원해 충북과 충남, 전북의 경계를 흘러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은 대한민국 3대 강으로 장수군 장수읍의 뜬봉샘에서 발원해 군산만에서 서해와 만나는 401km의 강이다. 금강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호수 같은 강 즉 '호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호남이라는 지명은 호강 즉 금강의 남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대전광역시 금강 유역에 대청댐이 있으며, 하류에는 금강하구둑이 있다. 부여군에서는 백마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구간은 진안군 하신천의 합류점부터 금강하구둑이다. 지류로는 갑천, 유등천, 무심천, 유구천, 논산천, 미호천 등이 있다.
금강이 옥천 땅에 들어오면 대청댐에 물길이 막혀 대청호를 이룬다. 대청호로 인하여 금강 하류에 빈번하였던 홍수는 멎게 됐다. 그러나 금강의 수량을 줄여 금강하구언과 함께 금강의 수운이 쇠퇴하게 만들었다.
금강이 웅진 즉 고마나루에 이르면 '곰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북쪽에서 이주해온 곰의 후손인 백제인들은 새로운 도읍에 흐르는 강의 이름을 곰강이라고 불렀다. 곰강은 곧 금강이 되었다.
군산과 장항 사이의 금강하구둑은 총 1841m로 1990년 완공됐다. 금강하구둑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며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금강 인근 물을 조절한다. 담수 공급량은 연간 3억 6000만 톤이다. 이 둑의 완공으로 강경은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하고 물류의 집산지로서 기능을 잃게 됐다.
△ 금강에서 태어난 예술
금강은 예로부터 뱃길로 이용되었고,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얽힌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건들과의 관계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금강은 백제의 멸망, 동학운동, 일제하에 있어서의 쌀의 수탈 등의 사건과 연계되어 한(恨)의 강으로 그려지고 있다. 구비문학에서 금강과 관련된 대표적인 설화로는 '곰나루 전설'과 '조룡대전설'이 있다. '곰나루전설'의 내용은 한 남자가 큰 암곰에서 붙들려 살다 달아나자 여기에 상심한 암곰이 새끼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은 뒤 자주 복선이 돼 사당을 짓고 고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유현종의 소설 '들불'에는 "금강을 이용해 왜인들이 쌀을 가져가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파헤쳐 아사 직전까지 이르게 했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도 금강을 타고 오르며 뇌물을 거둬 들이기에 정신이 없었고 백성들은 점점 어려워만 진다" 라고 해 금강이 백성을 수탈하는 길로 이용됐다.
이러한 금강의 역사적 사건들은 후대 문학작품에서 빈번히 서술되고 있다. 장효문의 서사시 '전봉준'에서는 "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은 / 호남이 제일 많아서 이만이요 / 충청이 그 다음으로 일만이요 (…) 금강에 뛰어들어 수혼원귀"라고 해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
금강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신동엽의 '금강', 유현종의 '들불', 장효문의 서사시 '전봉준' 외에도 1930년대 후반의 우리 민족이 처하여 있던 역사·사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탁류'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금강의 맑은 강물이 탁류로 변하는 과정은 우리 민족인 일본의 압제 속으로 전락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 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하나가 올라앉았다."라고 했으며, 줄곧 일제의 압박과 지배를 받는 민족의 표상이며, 시대적 고통이 개입된 강으로 표현하고 있다.
△ 금강이 통곡하다
2012년 금강은 크고 시원하다. 보기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4대강 사업으로 강은 포크레인이 강바닥을 헤집고, 강의 수위도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하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금강이 멍들고 있다.
1600년 간 숱한 애환을 수장한 채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은 올해 모습이 확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살릭 토목공사의 여파다. 친수공간 조성과 보 건설, 홍수터 정비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했으나 기대효과가 크지 않자 최근엔 살짝 뒤로 물러서 자전거길 홍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길이 22조원이나 쏟아 부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대표적인 치적이다. 금강 자전거길을 달려본 사람이면, "자전거를 타긴 좋은데 돈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니냐"는 반응이다. 효율성을 따져 봐도 4대강 자전거길은 주말 레저용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농번기를 맞은 해당 주민에게 레저용 자전거길이나 캠핑장은 '그림의 떡'이다. 토목논리를 앞세우다 보니 금강변은 중장비로 밀어내 평평한 황야로 변했다.
금강은 역사적 소용돌이에서도 잔잔하게 흘러왔다.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를 줬고,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들려줬다. 그렇게 금강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간혹 몇몇 지혜로운 사람들은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우둔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은 금강의 우는 소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벙어리가 되어 버린 금강. '꺼어억~ 꺼어억' 목 놓아 울고 싶지 않을게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어 울음소리 새나가지 않게 입을 틀어 막고, 속울음을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금강이 미련한 인간들을 위해 다시 울어주는 날을 기다린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
(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