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기억

임윤섭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아니 벌써'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개강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 되었다. 매월 그랬던 것처럼 일정을 체크하려 다이어리를 폈다. 6일은 '빨간 날'이고, 9일부터 유로 2012가 개막한다. 내 생일에 빅 매치가 열리는군. 근데 기말고사는 그 다음날부터고.

 

그렇게 쭉쭉 일정을 정리하다가 책상에 놓인 종이 쪼가리를 봤다. 아, 예비군 훈련이 있었지. 날짜를 살펴보니 공교롭게도 6월 25일이다. 6·25에 예비군 훈련이라. 뭔가 느낌이 묘하다. 씁쓸하면서도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6월. 우리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이고 기억일까.

 

생각해보면 6월에 대한 느낌, 감정들은 세대별로 각자 다른 것 같다. 나와 같은 또래들, 특히 남자들에게 6월은 월드컵의 짜릿함이 떠오르는 것 같다. 벌써 10년 전이지만, 2002년 6월은 온 국민들에게 기쁨이었고 환희였고 감동이었다. 국민들은 모두 빨간 옷을 입어서였는지,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분출되었던 응원의 열기와 함성 때문이었는지 그해 6월 대한민국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와 희망을 공유하고,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때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세대들, 혹은 흔히 386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에게 6월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간절함이 폭발했던 시간들, 그로인해 승리했던 시간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1972년 10월 유신이후로 15년 동안 지속되던 군사독재에 맞섰던 그 함성들. 마침내 지금의 헌법으로 개정해낸 우리의 선배들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일지. 똑같은 느낌과 생각일수는 없지만 그때 선배들의 모습들을 생각하며 상상해본다. 개인적으로 '다른 6월들'에 비해 그들의 6월은 비교적 조명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우리의 할아버지들. 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지켰던 6월.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가 총을 겨눠야 했고 싸워야 했던 그때의 6월은 어땠을까. 그나마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때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던 슬픈 6월. 그 슬픔을, 피와 땀들을 기억하고자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해놨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날은 그저 '빨간 날'이었을 뿐인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물론 현충일은 6·25 전쟁에서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다.)

 

6월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 우리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잊어지지 않는, 잊어서는 안 되는 6월인 듯하다. 2002년의 6월은 잊지 못할 감동이었고, 1987년의 6월의 함성은 국민의 열망을 담아 '성문화'가 되어 잊어지지 않으며, 1950년 6월의 피와 땀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평온한 6월도 2002년의 행복했던 6월도 1987년의 6월, 1950년의 6월이 있었기에 허락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나니 이번 예비군 훈련에는 다른 때보다 '비교적' 성실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투복을 입으면 몸이 '천근만근'이며 마치 '피곤한 사람 경연대회'에 선발된 선수처럼 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예비군 훈련 지도하시는 간부님들이 우리네 6월을 '재미있게' 상기시켜 주신다면 좀 더 협조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