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만리장성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국가문물국 퉁밍캉 부국장이 "2007년부터 5년간 만리장성에 대한 정밀 조사와 측량 작업을 진행한 결과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8㎞에 이르며 총 4만3721곳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6000km를 조금 넘는다던 만리장성이 2009년 장성의 동쪽 끝을 기존의 허베이성 산하이관에서 압록강 하구의 후산(虎山)산성으로 수정하면서 총 길이가 8851.8㎞라고 했고, 이번에는 3년 만에 무려 3.5배나 부풀렸다.
문제는 중국 동북부 지방에 있는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발해의 장성들까지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왜곡이다. 이 같은 이면에는 중화주의의 영토적 확장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북한 청천강 유역까지 만리장성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중국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동북공정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니 중국의 또 다른 장성판(版) 동북공정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이 같은 역사왜곡은 '통일적 다민족국가관'이란 역사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동북공정뿐 아니라 서북 서남 등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역사 편입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만리장성의 확대를 통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이 발표한 '역대 장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의 개념하고는 다르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학계도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통일된 목소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부와 학계가 나서서 적극적인 대응전략 마련과 통일된 대응논리 개발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