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팥쥐'의 발원지…한국의 신데렐라, 완주 앵곡·구암마을 곳곳에 숨쉬다

두은산·애통리·두월천·빨래터 소설 속 배경으로 / "발원지 갈등보다 차별화된 브랜드개발 관심을"

▲ 거북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구암리가 콩쥐의 아버지‘최만춘’이 살았던 동네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거북바위가 있는 구암마을 입구. (그 뒤로 콩쥐가 은혜를 입은 산이라 해서 붙여진 두은산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다. 다문화가정 초청 공연으로 한참 분주하신 스님이자 아동작가인 소야 신천희 씨의 초대로 김제 금구면 무주암에 들렀다. 스님은 올해 새한국인(이주여성) 세 분에게 처가에 갈 항공티켓을 보시했다 한다. 선행을 한다기보다는 이 무주암 인근이 한국의 대표적 권선징악형 한글고전인 '콩쥐팥쥐'의 발원지인 만큼 멀리 타지에서 이주해온 처자들을 위한 행사가 하나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취지에서 실천한 것이라 한다. '콩쥐팥쥐'의 발원지라……. 스님에게 '왜 이 곳이 콩쥐팥쥐전의 발원지인가?'하고 물음을 던지니 소설 속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지명이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일대에 지명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고지도 자료 분석과 등장인물 분석, 소설 속 지명 분석 등을 통해 현재 '콩쥐팥쥐' 배경으로 가장 유력한 마을은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앵곡마을로 연구된 사례와 이를 통해 김제시와 완주군의 사이에 콩쥐팥쥐 설화의 발원지를 두고 갈등했던 에피소드 등 그간의 사연을 들으니 콩쥐팥쥐의 배경마을이 되는 김제시 일원을 답사 겸 취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동문학가인 소야 스님이'콩쥐팥쥐'설화의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콩쥐팥쥐'의 발원지는

 

'조선 이조 중엽 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 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소야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구암마을과 둔산마을 일대에 해당한다. 그 곳에 퇴리 최만춘이 살았는데 지금의 둔산마을로 전주 최 씨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리고 최만춘의 부인은 조 씨로 인근 하천리가 조 씨 집성촌이고, 두 번째 부인은 배씨인데, 근처 상리가 배씨 집성촌이다. 팥쥐기방죽 팥쥐가 콩쥐를 죽인 곳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완주군 이서면 두죽리에 있으며 은교리, 앵곡마을 등과 함께 금구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군 분할시에 완주군 이서면으로 귀속되었다. 또 두월천은 콩쥐가 넘은 천이라하여 두월천이고 두은산은 콩쥐가 은혜를 입는 산이라고 하여 두은산이다. 두은산이 지금의 둔산이다. 이 둔산의 뒷산은 정말 소가 누운 듯한 형상이다. 또 그 근방에는 애통리와 분토리라는 지명이 있다. 최만춘이 콩쥐가 죽었다는 애통한 소식을 들은 곳이라 하여 애통리이고, 분통리는 최만춘이 계모 배씨와 팥쥐가 짜고 콩쥐를 죽였다는 분통 터지는 소식을 들은 곳이라 하여 분통리다. 예전의 분통리가 지금의 분토리가 되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현재 금구면 산동리 일대의 마을이름과 산 이름, 하천 이름을 빗대어 풀어보면 이러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만이 아니다. 이야기속의 하나하나의 단서를 찾아 더 들어가면 정말 이 곳이 그 곳인가? 혹은 콩쥐팥쥐가 실존인물은 아닐까? 하는 작은 믿음이 만들어질 것 같다.

 

콩쥐의 아버지 퇴리 '최만춘'이 살았던 동네는 콩쥐의 고향으로 거북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구암리다. 구암리는 '대섶들' 또는 '묵은들'이라 불렸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둔산마을이나 구암마을 보다 낮은 평야지대에 있었다고 한다. 구암리를 '대섶들'혹은 '묵은들'이라 불린 이유는 팥쥐가 콩쥐를 팥쥐기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인 날 밤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때 구암리가 물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살아졌다. 당시 구암마을이 있었다는 자리의 논에서 서까래와 기단석이 출토되었다는데, 마을이 있었다는 증거로 대나무가 있어 '대섶들'이라 불리워졌다. 동네 어르신들은 그 기단석을 보고 콩쥐가 빨래를 했던 '빨래바위'라고 불러왔다. 또 물난리로 농토가 초토화되어 한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이유로 '묵은들'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콩쥐의 외갓집은 금구 관아에서 멀지않은 '하천리'로 콩쥐의 엄마 조 씨는 하천리에서 태어나 구암리에 사는 최만춘에게 시집을 왔다. 팥쥐의 고향은 분통리다. 배씨가 구암리 근처 배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상리에서 태어나 분통리로 시집을 왔다. 그 당시 구암리 사람들 중 최 씨들은 지금은 둔산(두은산)에 새로 터를 잡았고 일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의 구암리에 터를 잡아나뉘어 살게 되었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과 스님의 주장은 전주 서문 밖 30리에서 시작한 앵곡, 둔산, 구암마을 일대는 여러 요소에서 '콩쥐팥쥐'이야기가 만들어질 충분한 공간적 배경을 갖고 있다.

▲ 작가·연대 미상의 국문 고전소설'콩쥐팥쥐전'

△ 콩쥐팥쥐는 실존인물일까

 

그럼 진짜 콩쥐팥쥐는 실존일물일까? 아버지는 퇴리 최만춘는 어떨까? 조선 중엽 전주 최 씨 족보 가운데, 최만춘 이라는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소설 속 최만춘은 실존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의 '콩쥐팥쥐전 배경마을에 대한 역사 지리적 고증'(2004)에서 등장인물과 관련된 성씨는 최씨·조씨·배씨인데, 콩쥐의 부친 최만춘은 가공의 인물로 당시 가장 유명한 전주 최 씨를 활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승철 완주문화연구회 회장 또한 '콩쥐팥쥐'현장을 찾았다. 2004〉에서 '퇴리 최만춘은 아전이 많은 전의 퇴리라 추정할 수 있지만, 조선 중엽 전주 최 씨 족보에 최만춘이란 이름이 없는 만금 실명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앵곡마을에는 마방자리(마구간 딸린 주막)와 말을 맨 돌자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는 마을 주민의증언은 이곳이 전주에 예속된 역참이 존재한 마을이었던 까닭에 앵곡마을은 왕래인이 많았을 것을 것이고 이곳의 지명과 함께 객들의 농담거리, 잡담 거리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수집, 정리되는 지리적 공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근거를 갖는다.

 

문화인류학자인 Jared Diamond가 쓴 'Guns, Germs And Steel'에서 콩쥐팥쥐를 'hodge and podge'란 재미있는 어구로 표현하면서 지역의 토속적 색깔이 반죽처럼 혼합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이유 또한, 앵곡마을이 조선시대의 남북을 잇는 큰 길가에 위치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어왔고, 여러 지역 색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임을 반증하고 있다.

 

'콩쥐팥쥐'는 어느 미상의 작가가 실화가 아닌 설화 혹은 구전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이 곳의 지명과 환경을 배경으로 소설화한 고대소설이자 한글소설인 것이다. 즉 문화원형 그 자체가 무형의 유산이다.

 

△ 보편적 인류문화원형으로써의 '콩쥐팥쥐'

 

완주군과 김제시의 경계 사이에 자리 잡은 '콩쥐팥쥐'의 배경마을인 앵곡·구담·둔산마을 일대는 한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완주군은 지난해 지명을 활용한 창작동화 공모전을 주최하고, 콩쥐팥쥐이름을 딴 도로명을 새로이 만드는 등 여러 방면으로 그 성과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정치 논리적 관점에서 작가미상인 한글소설의 배경이 된 지명의 유사성만으로 발원지를 주장, 보존, 관광 상품화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신데렐라 버전인 '콩쥐팥쥐'의 인문학적 가치와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방식의 접목을 통해 차별화된 브랜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취재를 통해 본 팥쥐기 방죽, 거북바위, 구월천, 콩쥐빨래돌 등의 사적들은 역사적으로도 검증할 수 없고, 인문학적 가치 혹은 문화적 가치로도 보존·개발할 만한 콘텐츠는 아니었다. 그러나 둔산마을의 어르신들은 마을 앞에 놓여있는 널은 바위돌 하나가 진짜로 콩쥐가 빨래를 했던 그 빨래바위라 믿고 계신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사신 게다. 또한 구암마을 구암바위는 거북이 모양이라 믿으신다. 사진 속 구암바위는 거북이 같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 분들의 말을 믿고 싶다.

▲ 송대규 문화전문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