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이 계속되고 있다. 20일 지식경제부는 '향후 저녁수급 전망과 대책'을 통해 8월 중 예비전력이 147만㎾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면 전력 수요 급증으로 8월까지 예비전력 수요관리 등의 조치가 없이는 400만㎾를 지속적으로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력난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심각성이 이렇게 가까이 인지되기는 처음이다. 시원하기로 소문만 대형마트나 은행도 무덥기는 마찬가지. 에너지다소비 건물의 냉방온도를 제한하는 정부시책 때문이다.
이렇게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마트와 학교까지 실내온도가 올라가자 대두된 것이 '쿨비즈(coolbiz)'룩이다.
쿨비즈란 시원하다는 뜻의 영단어 쿨(cool)과 사업 및 업무를 나타내는 비지니스(business)의 합성어로 여름철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재킷을 벗는 등의 간편한 옷차림을 뜻한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청와대를 비롯해 서울시 및 정부부처에서 먼저 도입해 실행하고 있다.
사실 쿨비즈는 이미 2009년 환경부에서 간편한 옷차림으로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로 '쿨맵시 캠페인'을 만들어 국민 참여를 유도했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올해는 더 빨리 찾아온 무더위와 전력난으로 정부가 솔선수범해 나서자 쿨비즈가 화두가 된 것이다.
전력난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만큼 우리나라 보다 쿨비즈를 먼저 도입한 나라가 있다. 2006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노타이의 캐주얼 차림으로 자택을 나서면서 쿨비즈 캠페인을 알렸다. 이에 따라 일본 변호사들이 노타이 차림으로 변론하는 등 쿨비즈 복장이 일반화되고 있었고, 2011년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력난 해소를 위해 확대 실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도 외국 고위인사들과의 만남에는 무례하게 비칠 우려가 있어 쿨비즈룩에 예외를 뒀다.
반팔셔츠가 정장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았던 서양은 옷의 스타일보다 원단의 변화를 줘 무더위를 달랬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미국 상원의원들이 더울 때 입는 정장 소재로 시어서커(seersucker)를 애용한 것. 여름에 많이 쓰이는 이 원단은 특수한 꼬임을 준 직물로 리넨(linen·아마)보다 시원하고 햇빛을 잘 반사하는 것이 장점이다. 가까이서 보면 잔잔한 주름이 이어져 있어 몸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해 더 시원하다. 다림질이 필요 없고 손빨래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보다 시원하고 나은 원단과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 의류업체, 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개발에 들어간 결과 '휘들옷'을 개발해 발표했다. '휘몰아치는 들판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옷'이라는 뜻으로 쿨비즈의 한국판인 것. 지식경제부와 한국패션협회가 범국민 에너지절약 시책 부흥을 위해 품평회를 갖고 35개 제품을 선정해 '휘들옷'이란 브랜드를 달아줬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지를 이용한 옷이다. 한지섬유 한지사로 만들어진 옷은 황토수준의 원적외선 방출, 향균성, 소취기능, 흡한 속건성, 용이한 염색성 등 다양한 기능성을 보유한 친환경 천연섬유소재로 전통성을 넘어 뛰어난 시원함을 지닌 여름철 소재로 기대된다.
아무리 정부에서 나서고 있다지만 쿨비즈룩이 쉬운 것은 아니다. 소재는 개발됐지만 아직도 디자인의 다양성은 턱없이 부족하고, 보수적인 기업이나 부서는 꺼리는 것이 현실. 여전히 엄격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가 쿨비즈의 보급을, 자연적인 패션의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